한의사도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한의학적 원리가 적용됐고 안전한 진단이 이뤄질 수 있다면 규제할 이유가 없다는 게 법원 판단의 취지다.
서울고등법원 제2행정부는 한의사 이모씨가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낸 면허자격 정지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원심 판결을 뒤집고 최근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씨는 2010년 9월부터 12월까지 약 3개월 동안 파킨슨병 및 치매 진단에 뇌파계(모델명 :NEURONIVS-32 plus)를 사용했다. 모 경제지는 이씨가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 여부를 확인하고 있는 사진이 포함된 기사를 실었다.
복지부는 "한의사가 의료기기를 사용해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고, 심의를 받지 않은 의료광고를 게재해 의료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이씨에게 3개월의 자격정지 및 경고 처분을 내렸다. 이씨는 “무면허 의료행위가 아니다”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한의사가 의사와 동일한 뇌파계 관련 교육을 받는다고 볼 수 없고, 정확한 진단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위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복지부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항소심은 원심을 완전히 뒤집어 “한의사도 뇌파계를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뇌파계, 한의학 범위 해당”
항소심 재판부는 뇌파계가 한의학의 범위 내에 속한다고 바라봤다. 뇌파계를 사용한 파킨슨 진단 행위를 ‘현대화된 한의학적 진찰방법’으로 바라본 결과다.
뇌파계는 환자의 두피에 두 개 이상의 전극을 부착한 후 증폭기를 통해 뇌파를 증폭한 후, 컴퓨터로 데이터 처리한 뇌의 전기적 활동 신호를 기록하는 장치다. 자동으로 측정 결과가 제공된다.
재판부는 “한의학에서는 뇌의 퇴행성 변화가 오장육부의 불균형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신체 표면을 만져서 진단(절진)한다”며 “배를 만지거나(복진), 맥을 짚어 파킨슨병 등을 진단할 때 뇌파계를 보조적으로 사용한 것은 절진의 현대화된 방법 또는 기기를 이용한 망진(望診)이나 문진(聞診)의 일종”이라고 설명했다.
망진은 시각을 통해, 문진은 소리와 냄새의 이상한 변화를 통해 질병을 관찰하는 방법이다.
재판부는 이어 “의료기술의 계속적 발전과 함께 의료행위 수단으로서 의료기기 사용 역시 보편화되는 추세에서 한의학 범위 내에 있는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서는 이를 허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의사도 안전하게 진단 ”
뇌파계는 생명의 위험 또는 중대한 기능 장애를 일으킬 가능성이 적어 위해도가 낮은 2등급 의료기기로 허가됐다.
복지부는 “같은 2등급인 안압측정기와 자동안굴절검사기, 청력검사기 등과 같이 측정 결과가 자동으로 추출되는 의료기기가 아니다”라며 한의사가 잘못 사용할 경우 보건위생상에 우려가 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뇌파계는 자동으로 정상수치와 비교해 뇌파의 저하, 항진여부, 예상되는 증상 등의 분석결과를 추출한다”면서 “설사 검사자가 추가로 판독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X-ray·CT·MRI 등과 같이 전적으로 의사의 판독에 의해서만 결과가 추출되는 것과 달리 상당 수준의 자동 추출 측정결과를 활용할 수 있다”고 일축했다.
재판부는 뇌파계를 사용하는 데 서양의학적 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한의학 교육과정 및 의사 국가시험에서 뇌파검사 능력에 대한 평가는 필기시험에서만 이뤄지고 있을 뿐 특별히 임상경력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의사도 뇌파계를 진단에 충분히 활용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이어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의료기기 성능이 대폭 향상돼 보건위생상 위해 없이 진단이 이뤄질 수 있다면 현대의학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뇌파계를 사용한 것이 의료법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