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한방 의약분업을 전제로 지난 1996년 개설된 한약학과 '입시결과(입결)'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한약 처방과 조제 역할을 이원하자는 취지로 신설된 한약사제도가 방치되는 동안 한약사, 한약학과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점차 식어가는 모습이다.
13일 입시업체 메가스터디의 2020학년도 정시지원참고표에 따르면 경희대학교 한약학과의 적정 지원성적은 표준점수 373(백분위 260) 및 영어 2등급이다.
자연계열 2구간에 있는 경희대 의예과와 치의예과는 표준점수393(백분위291), 3구간에 있는 한의예과는 표준점수 389(백분위289), 7구간에 있는 약과학과와 간호학과는 표준점수 376(백분위270) 등에 배치됐다.
한약학과가 있는 8구간에는 물리, 지리, 식품영양학과 등이 속했다. 경희대 자연계열 중 가장 낮은 점수 구간에 해당된다.
입시업계에 따르면 신설 당시 높은 점수대에 배치돼 있던 한약학과 적정지원점수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10년 전인 2010학년도 메가스터디 정시지원참고표에 따르면 당시 경희대 한약학의 적정성적은 표준점수519점(백분위 372)로 약과학과와 동일구간에 배치됐다.
같은 구간에는 고려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기계공학부 및 연세대학교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등 소위 'SKY' 대학 공대 주요 과들이 포진해 있다.
'한의학 붐'이 일었던 90년대 후반에는 지방 의예과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다.
1999년 전국대학 진학지도 기준표에서 경희대 한약학과는 약학과와 함께 8구간에 배치됐다. 같은 구간에는 원광대학교, 경상대학교, 제주대학교 주요 지방대학 의예과가 포함됐다.
같은 해 경희대 한의예과는 연세대 의예과와 함께 2구간에 배치됐다. 가톨릭대학교와 고려대학교 의예과는 그보다 낮은 3구간에 포함됐다.
한약사 제도는 1993년 한약분쟁 이후 양방과 마찬가지 형태의 한방 의약분업을 전제로 약사법이 개정되면서 신설됐다.
이에 따라 한의과대학과 약학대학이 모두 설치된 종합대학의 약학대학 내에 한약학과가 설치됐다.
한약학과가 신설된 90년대 후반은 한의학과가 각광받던 시기다. 한의사가 의사를 제치고 주요 유망직종으로 여겨지며 이와 함께 한약학과 인기도 치솟았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나는 동안 한방 의약분업은 이뤄지지 않았고, 대부분의 한약사들은 100종류 처방만 가능한 ‘반쪽짜리’ 권한을 갖고 한약국을 운영하거나 일반약국의 근무약사로 일하고 있다.
명확한 역할분담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수입 또한 의료법에 의해 조제권을 갖는 의사, 약사에 비해 부족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2월 발표한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의료기관 근무 인력의 평균 월수입(세전)은 ▲의사(1342만원) ▲치과의사(1002만원) ▲한의사(702만원) ▲약사(555만원) ▲방사선사(352만원)▲ 한약사(319만원) ▲보건의료정보관리사(304만원) ▲간호사 (329만원, 신규간호사 276만원) 등이다.
한 한약사는 “전문직인 만큼 소위 ‘밥벌이’를 못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모든 직종이 그렇듯 한약사들 가운데서도 빈부격차가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전공을 살려 직접 약국을 운영하는 것보단 근무 약사로 일하는 편이 수입이 높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일반 약국에서 근무하며 ‘연봉 1억’을 받는다는 다수 한약사들의 월급명세서 ‘인증샷’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한한약사회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방분업 가능성이 열려 있었고 한약학과를 졸업한 후 사회에 나갔을 때의 기대감도 컸다”며 “그러나 분업이 십 수 년 간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러한 기대심리가 사라지고 결국 직업인식 척도 중 하나인 입결도 계속해서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약학과를 졸업한지 10년이 넘는 한약사들의 현재 처우에 대해선 “약사들과 비교해 매우 열악하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