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점거를 풀어주면 보건복지부에 한의사전문의제도 개선안 유보 신청을 하고 바로 공청회를 개최하겠다."
지난 19일 전국 한의과대학생들의 한의협 회관 점거 사태가 발생한 이후,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엄종희 한의협 회장
[사진]이 22일 데일리메디와 첫 인터뷰를 가졌다.
"괴롭고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말문을 연 엄 회장은 "개선안을 유보시킬 의사가 있다"며 "학생들이 철수하겠다는 약속을 한다면, 그것이 안된다면 사무처 직원들만이라도 업무를 할 수 있게 해 준다면 복지부에 개선안 유보 신청을 하고 공청회를 개최해 한의사전문의제도에 대해 재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한의협 직원들은 회관 출입구가 모두 봉쇄돼 4일째 회관 밖 벤츠에서 대기하며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한의신문 기자들 역시 편집국 출입이 금지돼 이미 지난 21일자 신문 발행은 취소됐으며 오는 월요일자 신문 제작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엄 회장은 "회관 어디서든지 농성을 해도 좋다"며 "그러나 50여년 동안 닫힌 적 없는 한의협 사무처와 39년동안 폐쇄된 적 없는 한의신문은 정상적으로 출입 및 업무가 가능하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이 사무처 및 한의신문까지 폐쇄한 것과 관련, 점거가 길어질수록 비판의 목소리는 높아가고 있다. "점거나 농성 등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을 이해하지만 이렇게까지 한다면 업무 방해는 물론 직원들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아니냐"는 비판이다.
그러나 현재까지(22일 오후5시)도 출입구는 열리지 않고 있다.
다음은 엄종희 한의협 회장과의 일문일답.
지금까지 상황은?어제(21일) 공식적으로 학생들에게 '사무처와 한의신문만이라도 출입이 가능하게 해달라고 요구했고 그렇게 해준다면 복지부에 개선안 유보 신청을 하겠다'는 제안을 전달했다. 아직까지 긍정적인 대답은 없다.
그러나 학생 대표와 협회 대표가 어제 처음 공식적으로 대화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동안은 직접적인 대화가 불가능했다. 학생측에서 "이사회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었으면 한다"는 의견을 전달해왔다.
처음에는 화도 났지만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은 '원칙은 지키되 최대한 양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선안 완전 폐기'를 받아들일 의사가 있는지우선 현실적으로 '폐기'는 불가능하다. 정부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행동이다. 협회가 제출한 개선안대로 정부가 한의사전문의제도를 시행할 지, 현재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보건복지부에서도 이 개선안을 놓고 협회와 학계, 시민단체 등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정말 이 개선안이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판단해야 할 것이고 그 이후에도 장관의 최종 결정까지 거쳐야 할 단계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
넘어야 할 산이 7~8개나 더 있는데 초입부터 막으면 되겠느냐. 이런 식이라면 한의사전문의제도 문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
또 정부 입장에서 '폐기한다'하면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 그동안 쌓아온 한의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그래서 '유보' 신청을 하겠다는 것이다.
'폐기'란 37대 회장 및 집행부는 없어지라는 의미다. 협회가 이런 식으로 좌지우지 될 수는 없다.
현재 가장 답답한 부분은?한의협이 지금까지 쌓아온 노력과 결실이 이번 사태로 왜곡돼 비춰지지 않을까, 한의학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지 않을까 가장 걱정스럽고 괴롭다.
한의계를 둘러싼 외부의 여러 집단과 갈등을 겪고 있는 현재, 이들에게 틈이 보이거나 위축되진 않을까, 한의계의 모습이 외부에 왜곡돼 전달, 그동안의 노력이 후퇴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스럽다.
한의사전문의제도 문제의 해결책은?1999년 어설픈 전문의제도를 만든 것에 책임을 느끼지만 어찌됐든 기존 존재하고 있는 전문의제도를 물릴 수도 없고 한의계에 두 개의 전문의제도를 만들 수도 없다.
최선보다는 차선을 선택, 최악의 상황을 막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가장 나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한의대생을 비롯해 수련병원에서 수련 중인 전문의, 이제 막 개원을 시작한 한의사, 10년, 20년된 개원의 등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전문의제도는 불가능하다.
원칙은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신뢰를 쌓아 각자에게는 차선일 수 있지만 모두에게는 최선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전문의제도 문제를 풀어가려고 한다.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시간만이라도 집행부와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해주길 바란다. 사실이 아닌 정보 등을 갖고 판단하지 말고 직접 협회와 마주앉아 대화해주길 바란다.
국립한의학전문대학원 설립 사업을 진행하며 전국의 한의과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다. 사립대학교의 경우, 한의대 등록금과 의과대학과 등록금은 똑같다. 그런데 의과대학은 전임교수 기준으로 교수 1인당 학생수가 4명인데 반해, 한의대는 교수 1인당 학생수가 15명이나 된다.
전문의제도에 대한 한의대생들의 의견과 두려움 등은 이해하지만 그보다 교육의 주체인 학생이라면 자신들의 교육 환경 문제에 더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한의대의 더 나은 교육을 위해 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해결해 나가야 할 일들이 많다.
''폐기' 아니면 안된다', '이것 안해주면 답이 없다'는 논리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학생들의 투쟁에 굴복했던 1999년 사태가 재연된다면 한의계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 자리에 머물 수 밖에 없다.
사태가 장기화 될 것으로 예상하나오늘(22일)이 고비일 듯 싶다. 주말이 넘기면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한편, 학생들은 22일 오후 '올바른 한의사전문의제도 정립을 위한 공개 토론회 및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장소와 시각은 알려지지 않았다.
토론회 및 출범식에 대해 엄 회장은 "개선안이나 향후 점거 방식 등에 대해 자신들 스스로 재점검하는 자리가 되지 않겠느냐"며 "어느 정도 화를 가라앉히게 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