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조직 뚫는 암세포, 엄청난 에너지는 어떻게 공급할까
'예쁜 꼬마선충' 실험, 미토콘드리아·포도당 결집 메커니즘 확인
2022.03.28 08:20 댓글쓰기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전 세계적으로 사망 환자가 많은 질병을 들라고 하면 암은 심혈관 질환에 이어 2위로 꼽힌다. 암 사망자가 이렇게 많다 보니 지금까지 승인된 암 치료제도 200종이 넘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암 치료제는 종양을 파괴하거나 종양의 성장을 억제하는 작용만 한다. 암의 전이, 즉 원발 암에서 전이성 암세포 무리가 떨어져 나와 다른 기관으로 퍼지는 걸 차단하는 암 치료제는 극히 드물다. 
 

현재 전이암에는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암 사망자의 압도적 다수는 전이암 환자다.

마침내 전이암 치료제 개발에 결정적 열쇠가 될 수도 있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다른 데로 옮겨가는 암세포 무리가 눈앞의 '조직 장벽'(tissue barrier)을 뚫고 통로를 여는 메커니즘을 밝혀낸 것이다. 전이 암세포는 전방 조직을 돌파할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특정 분자 신호로 세포의 '에너지 공장' 격인 미토콘드리아를 끌어모으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자들은 이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단백질 2종과 관련 유전자도 확인했다. 이들 단백질은 에너지원(源)인 글루코스(포도당)를 세포 내로 모으는 관문 같은 역할을 했다. 암세포가 거친 조직을 뚫고 전이에 성공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차질없이 공급돼야 한다는 걸 시사한다.
 

이 발견은 전이암의 에너지 공급을 차단하는 획기적인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미국 듀크대의 데이비드 셔우드 생물학 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지난 21일(현지 시각) 셀 프레스(Cell Press)가 발행하는 저널 '발달 세포'(Developmental Cell)에 논문으로 실렸다.
 

논문의 교신저자를 맡은 셔우드 교수는 "암의 가장 치명적인 특성이 전이"라면서 "그런데도 이 부분을 가장 잘 모른다는 건 하나의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사실 암세포의 조직 침윤(浸潤) 과정은 연구하기 어려운 주제로 꼽힌다. 무엇보다 암세포는 언제 전이하는지 예측하기 어렵다. 게다가 암의 전이는 대부분 광선 현미경(light microscopes)으로 관찰하기 어려운 인체의 깊은 부위에서 이뤄진다.
 

연구팀은 고민 끝에 과학 연구 모델로 많이 쓰이는 '씨 엘리건'(C. elegans) 선충을 선택했다. '예쁜 꼬마선충'으로 많이 알려진 이 선형동물은 약 1㎜ 길이의 투명한 몸을 가졌다.
 

연구팀은 특히 이 선충의 발달 과정에서 관찰되는 '닻세포'(anchor cell) 조직 돌파 기제에 주목했다. 선충의 생식관이 형성될 때 닻세포는 조밀한 층 구조의 망(網)을 뚫고 들어가 짝짓기와 산란(産卵)에 필요한 경로를 연다.


흥미롭게도 암세포는 전이할 때 선충의 닻세포와 똑같은 기제를 이용했다. 앞이 막히면 세포 표면에서 피스톤 모양의 돌기들이 일제히 뻗어 나와 조직의 장벽, 즉 기저막(basement-membrane)을 뚫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팀이 맞추고자 한 퍼즐 조각은, 단단한 조직을 돌파하는 데 필요한 엄청난 에너지가 어디서 오는가 하는 것이다. 동력을 끊으면 당연히 기계도 멈출 거로 생각했다. 
 

연구팀은 선충의 닻세포에 '연료 게이지'와 비슷한 센서를 달았다. ATP(세포 에너지 단위)양이 일정 수위에 이르면 불이 들어오는 센서였다.
 

강력한 현미경 카메라로 관찰한 결과, 선충의 닻세포는 네트린(netrin)이라는 분자 신호를 내보내 뚫어가는 방향의 최전방에 미토콘드리아를 끌어모았다. 더 많은 ATP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네트린은 신경 발달 과정에서 축색 돌기(axon)의 연장과 세포 이동을 지시하는 단백질 족(族)이다.
 

연구팀은 또 선충의 유전자 8천300여 개를 검사해 닻세포의 조직 돌파에 관여하는 2개를 찾아냈다. 이들 유전자의 코드로 생성되는 두 단백질, 즉 FGT-1과 FGT-2는 ATP 원료인 글루코스(포도당)를 끌어들이는 게이트 역할을 했다.
 

조직 침윤이 시작되기 직전에 닻세포 가장자리에 이들 단백질이 쌓이면 더 많은 글루코스가 세포 내로 들어왔다. 두 유전자를 비활성 상태로 전환하면 닻세포의 글루코스와 ATP 수위가 급격히 떨어졌고, 약 3분의 1의 닻세포가 전진을 멈췄다.
 

연구팀은 이 동력 전달 체계가 전이암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셔우드 교수는 "지금까지 많은 연구자가 간과해온, 세포의 조직 침입 메커니즘을 일부 밝혀낸 것"이라면서 "ATP 공급의 폭발적 증가를 막으면 세포의 조직 침입도 억제하거나 중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