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슐린 내성 있으면 우울증 위험도 커진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 '공복혈당 기준 정상인의 2.66배'
2021.09.28 05:20 댓글쓰기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췌장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은 근육이나 지방 조직의 세포막운반체를 통해 혈액의 포도당이 세포 내로 운반되는 걸 촉진한다. 인슐린이 분비되면 혈당이 떨어지는 건 이런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포가 인슐린에 반응해 포도당 운반을 조절하는 정도를 인슐린 민감성이라고 한다. 인슐린 내성(insulin resistance)은 인슐린 민감성이 극도로 낮아지거나 아예 없어진 상태다.
 

인슐린 내성이 생기면 정상적으로 인슐린이 분비돼도 혈당이 떨어지지 않아 여러 가지 병리적 문제를 일으키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2형 당뇨병이다. 인슐린 내성은 비만 등의 대사질환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지방, 고탄수화물 음식을 지속해서 섭취하면 만성적인 인슐린 과다 상태에 이르러 세포의 반응력이 약해진다. 인슐린 내성은 이밖에 운동 부족, 과도한 스트레스, 수면 결핍 등으로도 생길 수 있다.
 

인슐린 내성이 고혈당 질환은 물론 우울증의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인슐린 내성이 있는 사람은 주요 우울 장애(major depressive disorder) 위험이 그렇지 않은 사람의 대략 두 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스탠퍼드 의대의 나탈리 라스곤(Natalie Rasgon) 정신·행동과학 교수 연구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지난 22일(현지 시각) 미국 정신의학협회가 발행하는 '미국 정신건강의학 저널(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에 논문으로 실렸다.
 

현대인에게 우울증은 상당히 심각한 정신 질환이다. 미국의 경우 죽기 전에 주요 우울 장애에 걸리는 사람이 20% 이상이라고 한다.
 

이 질환은 흔히 지속적인 슬픔, 절망감, 무기력증, 수면 교란, 식욕 상실 등의 증상을 동반하는데 때로는 아동기 트라우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대유행) 등과 같이 피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인슐린 내성은 섭식 조절, 꾸준한 운동, 적절한 약물 사용 등을 통해 완화하거나 완전히 없앨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 라스곤 교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 병원의 브렌다 페닝크스 정신 전염병학 교수와 논문의 공동 수석저자를 맡았다.
 

인슐린 내성이 몇몇 정신 장애와 연관돼 있다는 건 이미 학계에 알려졌다. 일례로 기분 장애(mood disorder) 환자의 약 40%가 인슐린 내성을 가진 것으로 보고됐다.
 

하지만 인슐린 내성과 우울증의 인과관계를 구체적으로 입증하려면 장기간 다수의 환자를 추적하는 종단적 연구(longitudinal studies)가 필요했다.
 

라스곤 교수팀은 주민 30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네덜란드 우울증 불안증 연구(Netherlands Study of Depression and Anxiety)'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페닝크스 교수는 이 연구의 책임 연구자(PI)다.
 

논문의 제1 저자인 라스곤 교수 랩(lab)의 캐슬린 왓슨 박사후연구원은 "대규모 환자군을 9년간 꼼꼼히 모니터해 온 네덜란드 연구의 데이터는 우리 쪽에 엄청난 기회가 됐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의 대조군에 속한 남녀 601명(평균 41세)은 최초 등록 시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전혀 없었다.
 

추적 기간의 인슐린 내성을 확인하는 덴 공복 혈당치, 허리둘레, HDL(고밀도 지단백) 대비 트라이글리세라이드(triglyceride·중성지방) 비율 등 세 가지 대용 지표를 썼다.
 

분석 결과, 이들 세 가지 지표의 측정치는 모두 주요 우울 장애 위험이 커지는 것과 연관돼 있었다. 예컨대 트라이글리세라이드/HDL 비율이 완만히 상승하기만 해도 주요 우울 장애가 생길 위험은 89% 커졌다.
 

또 복부 비만으로 허리둘레가 5cm 늘어날 때마다 주요 우울 장애는 11%, 공복혈당이 0.1리터당 18mg 올라갈 때마다 37% 늘어났다. 
 

연구팀은 오류를 줄이기 위해 약 400명을 추려내 다시 분석했다. 이들은 연구를 시작할 때 주요 우울 장애를 전혀 경험한 적이 없거나 인슐린 내성의 징후를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약 100명이 2년 안에 인슐린 내성(공복 혈당치 기준)이 생겼다. 단기간에 당뇨병 전증(prediabetes)이 나타난 이들 100명은, 주요 우울 장애가 생길 위험이 정상인 사람의 2.66배에 달했다. 이처럼 인슐린 내성은 2형 당뇨병 뿐 아니라 우울증에도 심각한 위험 요인이라는 게 연구팀은 결론이다.
 

라스곤 교수는 "지금부터라도 의사들은 우울증을 예방하기 위해 환자의 인슐린 민감성을 꼭 체크해야 한다"라면서 "큰 비용 들이지 않고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이 검사를 통해 평생 고통받는 질병을 줄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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