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구충제 이어 아스피린도 항암 효과?
미국서 논문 발표 뒤 확산, 전문가 '사실 아닌 선택, 책임은 본인 몫'
2020.01.10 15:18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양보혜 기자]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줄 알았던 개 구충제 '펜벤다졸 사건'이 인체용 구충제 '알벤다졸'에 이어 '아스피린'으로 확대되고 있다. 

새해 들어 논란이 된 사건은 미국에서 아스피린이 대장암 세포가 스스로 사멸하도록 유도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시작됐다.

구체적으로 보면 미국 시티오브호프(City of Hope) 연구소 암 전문의 아하이 고엘 박사 연구팀이 진행한 생쥐 실험에서 아스피린이 암세포 사멸을 유도하는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실험은 대장암에 걸린 쥐들에게 4개 그룹으로 나눠 아스피린을 ▲미투약 ▲저용량(15mg) 투약 ▲중간용량(50mg) 투약 ▲고용량(100mg) 투약한 뒤 관찰한 것이다.

그 결과 아스피린을 투여한 쥐들은 모든 세포주에서 암세포 자연사멸이 증가했고, 아스피린 투여량이 많을수록 암세포의 자연사멸이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일부 언론에서 이 연구결과를 보도하면서 아스피린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주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아스피린'이 올랐으며, 유튜브 등에서도 관련 영상이 게재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되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대응책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말기암이라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인 데다 인터넷에 올라온 체험기가 전문가들 조언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A교수는 "펜벤다졸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암 환자나 그 가족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개 구충제를 복용하겠다고 하면 저지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없다"며 "위험한 선택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지겠다고 하는데, 허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며 "물론 정보의 차이는 있지만 가짜뉴스나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부분이 우리가 더 약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고대안암병원 종양내과 B 교수도 "펜벤다졸이 한창 이슈가 됐을 때 응급실에 약 부작용으로 실려온 말기암 환자들이 상당히 많았다"며 "다수가 피해를 보지만 생존한 1명의 목소리만 여러 채널을 통해 희망처럼 회자가 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말기암 환자들이 스스로 펜벤다졸이나 알벤다졸, 아스피린을 구매해 복용하는 것까지는 손 쓸 수 없지만, 의료기관에서 펜벤다졸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의료행위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가톨릭대 성모병원 종양내과 C교수는 "펜벤다졸 논문의 근거 수준이 100점 만점에 10점 이하라고 볼 수 있다"며 "의학적 근거가 불충분한 약을 사람에게 투약해 임상을 진행한다는 것은 의료인으로서 비윤리적인 행위를 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국립암센터가 펜벤다졸 임상시험을 검토한 후 진행하지 않기로 한 결정은 당연한 선택"이라며 "동물에 효과가 있다고 사람에게 동일한 효과가 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더 큰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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