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특별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된 가운데 전공의 수련시간이 단축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해 의대정원 확대 발표로 1만명의 전공의가 병원을 떠난 상태에서 정부와 정치권은 적극적으로 전공의들 수련환경 개선을 약속하고 나섰다. 특히 수련시간을 현행 주 80시간, 연속 36시간 등에서 낮추고 타 직종처럼 근로기준법에 기반한 휴게시간을 보장하는 내용의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병원계는 대책 없이 수련시간만 줄이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법안 개정 시도와 전공의들 목소리, 병원계 우려 시각 등을 데일리메디가 정리했다. [편집자주]
전공의특별법은 지난 2015년 12월,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 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이 발의해 통과했다.
이는 주 80시간 수련 제한, 36시간 연속근무 제한 등으로 수련시간을 규정하고 있다. 교육 목적을 위해 주 8시간 연장이 가능하며, 응급상황 발생 시에는 연속 40시간까지 수련할 수 있다.
그러나 2022년 대한전공의협의회가 1만3000명의 전공의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1984명이 응답한 자료를 보면 실상은 달랐다.
전공의 평균 근로시간은 77.7시간, 4주 평균 80시간 이상을 초과해 근무했다는 응답은 52%에 달했다. 특히 인턴은 약 75.4%가 평균 주 80시간을 초과해 근무하고 있었다.
연속근무 시간 역시 현실은 더 부담스러웠다. 응답자 66.8%가 주 1회 이상 24시간 초과 연속 근무를 했고, 횟수는 주 2회(31.5%)가 제일 많았다.
김윤·서명옥 의원 ‘개정안’ 대표발의
21대 국회에서 전공의법 개정안이 통과해 수련 시간은 기존보 다 정부가 더 줄이는 것으로 정해졌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前 의원과 최혜영 前 의원이 내놓은 전공의법 개정안이 통과한 결과다.
▲연속수련 24시간, 응급상황 시 30시간 ▲주 68시간, 연속 24시간, 응급상황 시 36시간 등이 원안이었지만 기존보다 적은 범위로 정부가 줄이는 것으로 합의돼 지난 2024년 2월 통과했다. 시행일은 2026년 2월 21일이다.
하지만 2024년 2월 정부 의대정원 확대 발표 이후 대다수 전공의들은 수련현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전공의 단체는 수련환경 개선 등 7대 요구안을 1년째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핵심 의제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선정했고, 국회는 전공의들 목소리를 청취하며 의정대화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관련 법안들도 발의되기 시작했다.
특히 의사 출신 의원들이 나섰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 1월 전공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주 60시간 이내 ▲연속 24시간 이내 ▲응급상황에는 30시간 이내 등으로 단축하는 내용이 담겼다. 교육 목적으로 주 8시간 연장이 가능하다.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은 3월 전공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 다. 이는 ‘전공의들에게 근로기준법에 부합하는 수련시간을 결 정하고 휴게시간을 준수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수련생과 의료인이라는 이중적 지위로 근로기준법에서 보장하는 근로자로서 최소한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다. 이는 전공의들 요구사항과도 부합한다.
사직 전공의들 “의료인 주 52시간제 단계 도입”
사직 전공의들은 열악했던 수련환경을 토로하며 수련시간 단축을 비롯한 근무환경을 대대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3월 1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국회입법조사처·대한의사 협회·대한전공의협의회가 주최한 ‘의료현장 정상화를 위한 정책대화 :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토론회가 열렸다.
공개 발언에 나선 김은식 前 세브란스병원 전공의협의회장은 과거 파견 근무 중 코로나19에 확진된 바 있다.
복귀 후 그가 병원으로부터 들은 말은 “격리기간 동안 근무하지 않았으니 나머지 파견 일정 동안 4주 평균 80시간에 맞게 근무하라”는 것이었다. 김 前 회장은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주 120시간 고된 근무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근무 시작 전 환자 파악, 근무 종료 후 환자 인계에 소요 되는 시간까지 따지면 하루 평균 19시간 근무했고 휴게 시간 은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며 “밤을 새지 않는 날은 수요일 하 루 뿐이었다”고 토로했다.
김준영 前 순천향대병원 전공의협의회장은 내과 전공의 1년차 한 달 당직표를 보여주면서 “매일 3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하게 되고, 주 80시간 이하로 근무한 건 전체 수련기간 4분의 1도 안된다”고 설명했다.
이날 박단 대전협 위원장은 “근로기준법 수준으로 전공의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근로기준법 제50조 제1항의 근로시간(휴게시간 제외 40시간 초과 불가)을 따르고, 교육적 목적을 위해 1주 24시간을 한도 로 수련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주 80시간→주 64시간, 교육적 목적으로 24시 간 한도로 수련시간 연장 ▲연속 36시간→연속 24시간 등으 로 개정안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근로기준법 특례 업종에서 의료인을 삭제, 의료인 주 52 시간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휴게시간은 근로기준법에서 8시간 근로할 경우 1시간 이상을 근로 중에 줘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전공의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다.
박 위원장은 “전공의는 휴게시간을 온전히 보장받지 못한다. 병원이 휴게시간을 제공하지 않고, 24시간 내내 응급 상황에 대비하며 식사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한다”며 “휴게시간에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무급으로 노동하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병원 지휘·감독 아래 대기하며 업무를 수행하는 전공의들 휴게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하고, 법적으로 명문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사 확충 없이 수련시간 줄이면 막대한 차질”
전공의들 요구와 다르게 병원계와 교수들 입장은 우려스럽다는 반응이다.
대한병원협회는 김윤 의원의 전공의법 개정안에 대해 “의사인력 확충에 대한 실질적 대책 없이 전공의 수련시간을 줄이면 의 료서비스 제공에 막대한 차질이 예상된다”며 신중 검토 의견을 냈다.
사직한 전공의들 빈 자리를 메우고 있는 간호사들도 마찬가지로 우려했다.
대한간호협회는 “전공의 수련 과정 및 업무시간 감소에 따른 다른 의료인과의 업무부담 기준을 명확히 한 후 전공의 업무 축소와 간호사 업무 과중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공의 유인을 위해 수련기간을 줄였던 학회 역시 절대적 근무시간 축소를 걱정하고 있다.
2019년 수련기간을 4년제에서 3년제로 전환한 대한외과학회는 지난해 10월 추계학술대회에서 4년제 복원 가능성을 내비쳤다.
전공의 근무시간이 주 80시간에서 60시간으로 줄어들 경 우 수련의 질을 담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를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신응진 前 대한외과학회 이사장은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과 지위 향상은 필요하다”면서도 “절대적인 수련시간이 줄어든다면 수련의 질도 담보할 수 없다”고 봤다.
신 前 이사장은 “전공의 근로시간이 주 60시간으로 줄어들면 연차별 교육을 진행하지 못하고 정규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전문의가 되는 신분인 만큼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