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국정키워드 '공정'···의대교수들 '연구부정'
해당 논문 어떻게 이용됐는지 사실관계 파악 깜깜···'공정사회 기치 공허'
2020.01.09 12:07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고재우 기자]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천명한 말이다. ‘공정’은 문재인 정부를 탄생하게 만든 키워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키워드가 조국 前 법무부 장관 사태를 겪으며 역으로 문재인 정부를 겨누는 화살이 됐다.

특히 조국 前 장관 딸이 제1저자로 참여한 ‘출산 전후 허혈성 저산소뇌병증(HIE)에서 혈관내피 산화질소 합성효소 유전자의 다형성’ 논문이 고려대학교와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에 기여했다는 논란은 우리 사회의 소위 지도층 인사들의 공정성에 강한 의문을 품게 했다.

더욱이 조 前 장관의 “부적절했으나 위법은 아니었다”는 발언은 청년세대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하지만 연구부정이 비단 조 前 장관 딸에만 해당되는 것일까.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국내 유수 대학병원 소속 교수들의 연구부정과 논란은 사회지도층인 이들이 ‘법망 밖’에서 벌인 엇나간 부정(父情)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2018년 5월 교육부는 연구윤리전문가로 구성된 검토자문을 통해 대학에서 연구부정이 아니라고 판정한 127건 가운데 85건은 검증절차에 문제가 있고, 국가 연구비가 지원된 51건 중 8건에 대해서는 복지부에 재검증토록 요청했다.

우선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산업진흥원(진흥원)은 서울대병원 K교수의 미성년 자녀 공저자 등재 등 ‘연구부정’을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교수에 대한 ‘패널티’는 없을 예정이다.

K교수 연구부정 드러났지만 ‘패널티’ 무(無)

진흥원이 제시한 이유는 이렇다. K 교수 논문은 지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수행됐는데, 이는 과학기술법 규정 신설(2010년) 이전의 일이기 때문에 행정제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대학에서 개별적으로 내릴 수 있는 교수에 대한 징계 시효는 ‘3년’이다. 이 때문에 K교수에게 지원된 1억7700만원 연구비 환수는 물론 향후 국가연구개발사업 연구 참여를 제한하는 일도 없을 전망이다.

K교수가 재직 중인 서울대학교도 입장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관계자는 “복지부에서 서울대학교 연구진실성위원회로 교원 징계를 요청했지만 징계 시효가 지났기때문에 ‘주의’나 ‘경고’ 선에서 종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의나 경고는 인사상의 처분이 아니다. 서울대 관계자는 “인사 및 신분상 K교수에 대한 제재 조치는 없을 것”이라며 “향후 근무 성적이나 성과급, 포상 등 부분에서 참고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복지부는 서울대에 보낸 공문에서 지원금 환수나 연구 참여 제한 등의 내용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서울대에 연구기관 경고조치를 통보했을 뿐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미 법적인 검토를 마친 상황”이라며 “과학기술기본법 규정이 신설되기 이전 사안이기 때문에 제재가 어려운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밝혔다.

연구부정 나머지 6건 향배 관심…“실질적 제재 어려울 듯”

K교수 연구부정(2건)이 최종 확인되면서 나머지 6건에 대한 관심도 쏠리고 있다. 

복지부는 ‘규정’을 들어 서울대·연세대·성균관대학교 등에 검증을 요청했으나, 앞서 해당 대학들은 ‘연구부정이 아니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나아가 K교수 사례에서 보듯 연구부정이 확인된다고 할지라도 과학기술법 규정 신설, 징계 시효 등 사유로 연구비 환수 및 국가연구개발사업 참여 제한 등 제재는 어려워 보인다.

이들에 투입된 예산은 총 37억 1250만원이다. 세부적으로는 L 서울대병원 교수(13억 4250만원), N 성균관대학교 교수(12억 4500만원)·K 삼성서울병원 교수(5억원)·K′ 삼성서울병원 교수(2억 7000만원), K 세브란스병원 교수(2억 4000만원)·H 세브란스병원 교수(1억 1500만원) 등이다.

대학들도 해당 교수에 대한 징계 시효가 ‘3년’이라면 출판년 기준으로 교수 5명이 징계시효를 이미 벗어난 상태라는 입장이다.

서울대병원 L교수(출판년, 2015년), 세브란스병원 H교수(2014년), 삼성서울병원 K교수(2014년), 삼성서울병원 K'교수(2010년), 성균관대학교 N교수(2010년) 등이다. 

이 사안은 과학기술기본법 신설 이전에 있었던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일부 환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마저도 행정소송 등 송사(訟事)로 번진다면 국가의 환사를 장담할 수 없다.

진흥원 관계자는 “현재 대학 자체조사 과정 결과가 미흡했기 때문에 재조사를 하라고 한 것”이라며 “재조사 요구 시 잘못된, 혹은 부족한 부분 등을 지적해 동일한 행위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장정숙 의원(대안신당/가칭)은 “해당 대학교들이 자체적으로 걸러내지 못 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조사 주체가 된 것으로, 고양이에 생선을 맡긴 꼴”이라며 “이미 신뢰를 잃은 대학의 추가조사를 바라기보다는 복지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복지부 예산으로 추진한 국가연구개발사업의 부정이 확인됐음에도 불구하고, 규정 미비 등을 이유로 손을 놓는 것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며 “청년세대가 느낄 허탈감을 조금이라도 상쇄하기 위해서라도 K교수에 대한 징계는 물론 해당 논문이 어떻게 이용됐는지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더 큰 문제는 조 前 장관 딸의 입시의혹에서 보듯, 교수 자녀들이 해당 논문을 대입과정에서 어떻게 활용했는지 여부도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대학은 입시 관련 자료를 4년 동안 보관하는데 이 기간이 지났다면 경찰 수사의뢰 등이 어렵기 때문이다.

해당 논문이 자녀 대학입시 등에 활용됐다면 경찰 고발 등을 통해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교육부는 관련 의혹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가 있어야만 수사의뢰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각 대학교에서 논문 등 대입 입시자료를 보관하는 기간이 ‘4년’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마저도 확인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복지부는 “법이 허용하는 선에서 최대한의 조치를 취했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재 해당 논문이 대입에 활용됐는지 여부에 대해 조사 중”이라면서도 “자료보관 연한이 4년 정도로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언급한 ‘공정’이 더욱 공허하게 들려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요구는 제도에 내재한 합법적 불공정성을 바꾸라는 것이고, 사회지도층일수록 더 높은 도덕심을 발휘하라는 것”이라며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런 측면에서 법망 밖에 있던 서울 유명 의대 교수들의 연구부정 사건은 결국 실체만을 드러낸 채, 알맹이 없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송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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