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용 마약류 관련 사고 증가 및 한의사 무면허 의료행위 등과 같은 사건이 이어지면서 의료계 내에서 전문가 주도 면허관리기구 설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의료 관련 사고 및 민원을 조사하고 자율징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면, 전문가 단체로서 사회적 책무를 더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8일 대한의사협회 POLICY 특별위원회는 '면허관리기구 역할과 기능, 그리고 전문가 권리 확보' 포럼에서 영국과 싱가포르 등 해외 사례를 통해 국내 면허관리기구 설치의 필요성을 논의했다. 

박현미 재영한인의사협회 前 회장은 "한국에 의사면허기구가 없다는 점 및 2020년과 2024년 의정갈등 사태를 지켜보며 정부가 쉽게 의사면허를 박탈하겠다고 발표하는 것이 무척 놀라웠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환자 케어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영국에선 의사들이 주축이 된 면허관리기구가 1421년부터 논의돼 1858년 생겼다"고 덧붙였다. 

박 전 회장은 "General Medical Council(영국의료협회)은 우리나라 대한의학회,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한국의학교육평가원, 대한의사협회, 보건복지부가 나눠 맡은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고 했다.

GMC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환자 보호 및 의료서비스 품질 유지, 의사면허 발급 및 갱신 관리, 의료윤리 및 전문성 유지 기준 설정, 의료과실 및 비윤리적 행위 감시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영국, 미국, 독일 등과 같은 의료선진국은 물론 싱가포르 역시 의사면허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Singapore Medical Council은 의사등록법을 근거로 설립됐으며, 보건부 산하 법정위원회에서 운영한다. 

안덕선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은 "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였던 터라 제도를 우리보다 빨리 갖췄다"며 "SMC는 1만7000여 명의 의사를 관리하며 정부가 75명의 행정직원 지원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英 민원 1위 의사 개인 부문 '성(性) 이슈', 직무 부문 '부정직'

특히 해외의 면허관리기구들은 의료과실 및 비윤리적 행위 감시는 물론 자율징계권도 갖고 있다. 환자뿐만 아니라 병원, 동료 의사들도 민원을 제기해, 내부 자정작용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안덕선 원장은 "영국 GMC는 자체적으로 1심 기능을 갖고 있다"며 "프랑스에서도 지역면허기구가 1심, 국가면허가기구가 2심, 국가위원회가 3심 역할을 맡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독일연방통계청의 의사면허 관련 형사소추 건수를 살펴보면 2010~2013년 0건, 2014~2019년까지 1건씩으로 보고된다"며 "벌금형, 집행유예가 다수를 이뤘고, 재범이 많았다"고 부연했다. 

박현미 전 원장은 "영국에선 환자와 그 가족, 타의료인 등의 불만이 제기되면 심사 과정을 거쳐 조사를 개시하고 징계 여부를 결정한다"면서 "민원 접수의 상당수가  의사나 병원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사 개인에 대한 민원은 성희롱 등 '성(性) 이슈'가 제일 많고, 업무적 측면에선 '부정직'이 가장 큰 문제가 됐다"면서 "의사로서 역할이나 직위를 유지하기 위해 한 거짓말이 가장 엄격하게 다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해영 전 의협 법제이사는 "변호사협회도 면허관리기구 역할을 갖는데 30년 이상 시간이 걸린 것 같다"면서 "의료계에서 영국 등의 사례를 제시하며 형사 사건이 적다, 면허관리기구를 전문가가 담당해야 주장하고 있지만 국회에서는 동일한 사례를 정반대로 해석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김 전 법제이사는 "보건복지부, 의협, 병협이 각각 1/3씩 운영기금을 내고 면허관리기구를 만든 후 기구 역할과 업무범위를 다듬어 나가면 된다"며 "변호사 면허관리기구도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언급했다.

박 전 원장은 "영국에선 의사들이 연간 2800억원의 회비를 내 GMC가 운영된다"며 "정부와 외부단체 지원을 받으면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매년 5년마다 면허 갱신도 하고, 의사교육도 평가한다"면서 "한국은 이제 성장하는 단계다. 조급하게 생각하기 보단 한국 의료현실에 맞는 제도 및 기구에 대해 논의하고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