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 가려진 정신과 비애(悲哀)
김진수 기자
2019.01.11 05:52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김진수 기자. 수첩] 상식적으로 벌어져서는 안되는 일이 발생했다.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진료실에서 환자의 흉기에 무참히 살해 당한 사고 말이다.
 

모여서 함께 세밑을 보내고 새해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상황에서 비보(悲報)를 들었을 가족들의 충격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고(故) 임세원 교수에게 애도를 표한다.
 

사건이 발생한 직후 언론을 비롯해 의료계에는 이번 사건이 예견된 일이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의료진이 환자로부터 폭행을 당하거나 신체에 위협이 되는 크고 작은 일들이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꾸준히 있어 왔기 때문이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충북 종합병원에서 정신의학과 의사가 조울증 환자로부터 폭행당해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었다. 강릉의 한 병원에서도 조현병 환자가 의사에게 폭행을 가해 전치 2주 상해를 당한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응급실 폭력 사태가 연이어 발생하고 응급실 내부 CCTV 영상이 공개되며 언론과 국민들의 시선은 응급실 근무 의료진의 고충에만 쏠려 있었던 게 사실이다.
 

지난해 대한응급의학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사·간호사를 포함한 응급실 종사자 63%가 폭행당한 경험이 있고 이 중 55%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비교해 최근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정신병원 의료진 94%가 환자로부터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보면 정신과 의료진 역시 역시 응급실 종사자 못지 않는 수많은 위험을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 수치로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 및 병동에서도 응급실 만큼이나 의료진 피습이 비일비재했다는 것은 확인된 셈이다. 다만 공론화되지 못했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응급실 폭력에만 쏠려 있었던 것이다.
 

특히 공론화 부분에서는 기자로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의료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누구보다 먼저 지적하고 작은 목소리라도 듣고 모두에게 알렸어야 했음에도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대화 중 “대부분의 환자들은 큰 문제가 없지만 매우 드물게 환자로부터 두려움을 느낄 때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데 그 이야기를 흘려들은 것 같아 마음이 편치않다.

일찍이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법무부 보호관찰소에 사전 위험성이 수 차례 신고됐음에도 어떠한 안전조치도 없었다. 시스템 개선 및 보호관찰 안전망 확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지만 실질적인 개선에는 이르지 못한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번 사건 후 병원계는 의료법 개정을 통한 법률적 보완을 촉구하는 동시에 대한신경정신의학회도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물론 국회에서도 여야가 한 목소리로 철저한 대책 마련을 강구하겠다고 천명한 상황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에는 의료진의 안전한 진료환경 마련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만큼 실질적인 개선까지 다다르길 기대한다.
 

환자들이 보내온 편지를 소중히 보관하고 진정한 인술을 펼쳤던 故 임세원 교수가 다시 돌아올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는 두 번째 ‘임세원 교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더 많은 관심과 책임감을 갖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울러 사고가 발생하면 부랴부랴 재발 방지 법안을 만드는 사후약방문 방식이 아닌, 적어도 생명을 살리고 다루는 의료진 ‘안전’을 위해 그들의 작은 말 하나라도 허투루 넘기지 말고 대응하는 진정한 모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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