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항암제 급여권 진입했지만 더 힘든 환자들
박근빈기자
2018.03.19 05:17 댓글쓰기

[수첩]2017년 8월21일 키투루다, 옵디보가 급여권에 진입한 뒤 약 7개월여 됐다. 하지만 말기 암 환자들에게 마지막 희망으로 불렸던 면역항암제가 실상은 ‘그림의 떡’으로 변했다.


비소세포폐암, 흑색종 급여기준 외 환자들에게는 오히려 더 많은 절차가 생겨 처방이 힘든 등 고통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면역항암제가 급여권에 진입하기 전에는 고가의 약제여도 경제적 여건만 갖추면 오프라벨 처방이 수월했지만 상황은 달라졌다.


급여목록 리스트에 오른 약제로 위치가 바뀌면서 오남용이나 부작용 이슈가 큰 사안으로 바뀐 것이다. 기존에는 요양병원에서도 처방이 가능했는데 다학제위원회가 설치된 71곳의 대학병원만 처방이 가능하도록 조정됐다. 사전승인 절차를 통과하지 못하면 약을 처방받는 것이 굉장히 어렵게 된 상태다.  

실제로 간암, 유방암, 위암 등 말기 암 환자들은 대학병원을 찾아 약을 처방받기 위한 물밑작업을 벌어야만 하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됐다.
 

급여권 진입이라는 성과 이면에 ‘급여기준 외 환자’라는 꼬리표가 붙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 꼬리표는 의사들이 처방을 내리기 힘든 부담으로 작용했다. 각 의료기관의 다학제위원회를 통과한 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허가초과 약제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절차를 무시하고 약을 받으면 ‘임의비급여’로 간주된다.


임의비급여 비율이 5%가 넘는 의료기관은 이 금액 자체가 부당청구로 간주돼 진료비 환수 및 업무정지, 과징금 등이 부과될 수 있다.


물론 사전승인을 득하면 문제가 없지만 이 기간까지 약 3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 의료기관 다학제위원회에서 1개월, 심평원 승인 60일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제도권 밖 환자들도 대부분 말기 환자들이므로 사전승인 기간을 줄이거나 임의비급여 비율을 상향조정해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


실제로 면역항암제를 투약받고 있는 환자의 가족은 “일정 비율 이상 임의비급여가 많아지면 의료기관은 패널티를 받게 되는데 이 부분의 제한을 풀어줘야 한다. 제도적 절차가 많고 복잡해져 이로인해 고통받는 환자들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하소연했다.


이는 환자들이 나서서 의료기관의 부당청구, 현지조사 등 규제를 풀어달라는 뜻으로 안타까움이 커지는 대목이다.


이러한 상황을 인식한 심평원은 면역항암제 허가초과 사후승인 관련 개정안을 내놓았다.


다학제위원회의 결정이 내려지면 곧바로 처방이 가능한 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 골자다. 다만, 사후승인은 사전승인보다 까다로운 혈액종양내과 의사 3명, 혈액종양분야 소아청소년과 의사 1명을 포함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이와 관련, 한 면역항암까페 회원은 “사전승인 기관이 71곳이었는데, 사후승인은 30곳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대부분은 수도권에 집중돼 지방에 사는 환자들의 접근성이 더 축소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혈액종양내과 의사 4인이 모여 다학제를 하라는 장벽을 또 만든다는 것인데,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절차는 여전히 까다로울 것이며, 이로 인해 말기 암 환자들이 고통은 커질 것”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사전이든 사후든 중요한 것은 급여기준 외 환자들도 처방을 받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게 정말로 큰 바람인 것인지 심평원 관계자들에게 묻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심평원의 역할론에 대해 강한 비판을 하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심평원 역시 제도적 한계에 놓여 있음이 드러났다.


비급여 약제가 급여권 진입이라는 결정을 받게 되면 관리를 해야만 하는 업무가 진행되므로 환자들의 안타까움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남모를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면역항암제 급여 등재 후, 급여기준 외 환자들의 민원전화를 계속해서 받고 있다. 예외적으로 기존 환자들의 오프라벨 처방 허용하는 등 개선책을 내놓았지만 그 간극이 줄어들고 있지 않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사후승인도 기존의 절차를 줄여 빨리 처방받을 수 있도록 개선하는 목적으로 준비 중에 있지만, 그 취지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말기 암 환자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소연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심적 부담이 크다”고 밝혔다.


이처럼 면역항암제 급여권 진입 후, 발생하는 급여기준 외 환자와 심평원과의 갈등의 골은 더 깊어져만 간다. 마지막 희망에서 그림의 떡으로 변해버린 면역항암제는 생(生)과 사(死)의 영역에서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 상태로라면 단순히 관련 규정 개정만으로 갈등을 봉합하기는 어렵다. 결국 환자의 접근성 확보과 처방권 문제, 임의비급여, 오남용 및 부작용 이슈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개선방안이 나와야 할 시기다. 모든 논의는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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