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품은 민간보험사, 묵묵부답 심평원
박근빈 기자
2017.11.27 16:13 댓글쓰기

[수첩]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빅데이터를 꺼내 들었지만 자료제공 및 유출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민 건강권을 수호하는 정부 기관으로서의 진정성에 의심을 받고 있다.
 

의료 관련 빅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고, 창업 활성화의 기폭제 역할은 물론 질환별 연구 등을 토대로 예방적 접근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근본적으로 민간회사의 역량 강화가 아닌 대국민 맞춤형 건강정보 서비스를 구현한다는 취지였다.


몇몇 스타트업은 성공하는 사례로 거론됐고 일부 제약사는 신약개발에 도움이 됐다. 때문에 심평원 의료 빅데이터는 인기가 많았고 연구자들도 몇 달을 기다려야만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다 사달이 발생했다. 국정감사에서 건강보험을 토대로 형성된 빅데이터를 심평원이 민간보험사에 넘겼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본질적으로 국민들이 제공한 소소한 정보들이 쌓여 심평원의 빅데이터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인식이 컸고, 때문에 민간보험사의 이익을 위해 활용된다는 점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었다.


지난달 국감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심평원이 2014~2017년 8월까지 KB생명보험 등 8개 민간보험사 및 2개 민간보험연구기관이 당사 위험률 개발과 보험상품연구 및 개발하겠다는데 1건당 30만원의 수수료를 받고 표본 데이터셋 총 52건, 6420만명분의 개인정보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국정감사 이후 자료 재검토 과정에서 삼성생명, 삼성화재, 교보생명, 신한생명, 코리안리재보험 5곳에도 총 35건, 4430만명분의 표본 데이터셋을 제공한 것이 추가 확인됐다. 


여기서 표본 데이터셋은 비식별화된 자료로 성별, 연령 등을 담은 일반내역 뿐 아니라 진료행위 등을 담은 상병내역과 주상병 등이 담긴 진료내역, 원외처방내역으로 구성됐다.

아무리 비식별화 코드를 입혔다고 해도 공익적 목적이 아닌 영리목적의 정보제공을 했다는 것은 큰 실책이다. 심평원이 빅데이터로 해야 할 일은 민간보험사의 연구를 지원해 보험상품을 개발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평원과 달리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경우는 ‘공공데이터의 제공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에 의해 민간보험사에 자료를 제공하는 것을 ‘제3자의 권리를 현저하게 침해하는 경우’로 보고 민간보험사에 자료를 넘기지 않았다.


결국 이 사안은 심각하게 퍼졌다. 빅데이터 예산 확보에도 빨간불이 커졌다. 이에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심평원의 빅데이터를 민간보험사에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현재 심평원도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심평원은 “빅데이터 제공체계를 손질하고 개선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 건보공단 노조 및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심평원이 민간보험사가 국민 건강정보를 사간 이유를 알고 있으면서 이를 묵인했다는 점이 큰 문제다. 환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는 환자들에게 불리한 상품을 만드는데 건강보험을 활용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던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사업에 2018년 예산 약 115억 원을 편성했고, 이는 법률적 근거 없이 단계적으로 상업적 이용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도 사업 추진이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 심평원의 행보는 더 큰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국감이 끝난 지 한 달이 됐지만 아직도 입을 꾹 다문 채 공식적인 사과문조차 발표하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 뒤에서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심평원의 모습은 실망스럽다.


빅데이터를 강조해 왔고 그 가치를 중요하게 판단했다면 적극적으로 관련 내용에 대해 상세하게 해명해야 하는 것이 국가 의료데이터 중심 기관의 책무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추후에도 심평원이 믿음을 줄 수 있는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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