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비선진료' 타산지석 삼는 서울아산병원
정숙경 기자
2017.03.23 06:20 댓글쓰기

지난 2015년 대한민국을 극도의 혼돈에 빠뜨렸던 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 위기를 둘러싼 논쟁은 '날벼락' 이라는 견해와 함께 '내부의 구조적 문제가 누적된 결과'라는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 2년 여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그 때의 상흔은 아직도 초일류 지향이라는 삼성서울병원 이미지에 큰 상채기를 남겨 놓았다.


‘촛불 시민’이 만들어 낸 박근혜 대통령 탄핵.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사건 중심에는 비선진료 의혹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학교수를 비롯 일부 의사들이 연루됐다. 이들 중 국민들 의식에 뇌리를 남긴 인사를 꼽으라면 바로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이다. 제기된 의혹과 거짓 해명에 대한 오해가 일부 풀렸지만 그에 대한 비판은 곧바로 서울대병원이라는 브랜드에 크나 큰 흠집을 냈다.


삼성서울병원과 서울대병원. 두 기관은 국내 최고 대학병원이자 대한민국의 진료 표준으로 통하는 곳이다. 환자 및 보호자들 신임은 꽤나 두텁다. 의료진들 실력을 바탕으로 한 세계적인 명성도 굳건하다.


두 병원이 이뤄놓은 성과는 분명 우리나라 의료 역사에 있어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이들 병원들의 '운명'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있음을 실감케 했던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어깨를 견주웠던 소위 잘나가는 대학병원들의 표정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 

국민들이 끝도 없이 어지러운 세상에 국가 리더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뼈저리게 느낀 것처럼 병원계에도 언제, 어떤 칼바람이 불어닥칠지 예상할 수 없다. 삼성서울병원과 서울대병원 홍역을 지켜보면서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는 국내 최고라고 자부하는 서울아산병원의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다. 

그런 위기감은 2017년 정유년 신년사에 반영됐다. 6년 재임한 박성욱 원장의 바통을 이어 받은 신임 이상도 원장이 직접 자신의 뜻과 가치, 비전을 담은 것이다. 삼성서울병원과 서울대병원 사태를 지켜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이 아니라 안타까운 심경과 동시에 예측할 수 없는 비상 상황에 대비하고 미래를 내다봐야 하는 절체절명의 숙연함이 기저에 깔렸다. 

올 초 출범한 서울아산병원 이상도號는 다시 한 번 옷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원장의 진정성이 담긴 신년사는 서울아산병원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나침반이기도 하다.

지난 1989년 개원, 조만간 30주년을 맞는 서울아산병원은 명실상부 국내 최대 의료기관으로 우뚝섰다. 국내외 유수 대학병원들이 오랜기간 걸쳐 쌓아온 명성과 업적을 불과 20여년 만에 달성하는 경이로움을 현실화시켰다.

그러나 이 같은 자부심 뒤에는 고민도 결코 작지 않다. 실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왔던 서울아산병원은 2008년 신관 건축을 마지막으로 멈췄다. 그리고 궤도를 수정, 질적 성장을 위한 시스템 향상과 환자 안전을 견고히 하는데 총력을 쏟았다. 
 
이상도 원장은 “수백 명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항공기는 매뉴얼화된 시스템 안에서 승객의 안전을 지킨다. 병원에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환자 안전 역시 시스템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위기 대응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더불어 의료에 있어 완벽함에 기반한 '명품론'을 설파했다. 그는 “완벽함은 작은 일까지 놓치지 않고 관리하는 것"이라며 "‘특별함’의 원천이고 환자 중심 병원의 선도주자로써 의료 프로세스 전반의 디테일 추구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재 서울아산 암병원은 712병상으로 국내 최대 규모이고 수술 실적은 2013년 1만7467건에서 지난해 1만8815건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요즘 들어서는 외래환자도 1만명을 항시 상회, 더욱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암 치료 분야 세계 1위인 미국 MD앤더슨센터가 631병상 규모에 연간 8656건을 시행하는 것과 비교하면 암 수술 실적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풍부한 수술과 치료 경험은 자연스럽게 많은 임상데이터를 축적해 왔다. 그만큼 환자 치료에 있어서는 대한민국 역사를 써내려갈 정도로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

다만, 언젠가 다가올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은 하루 아침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치밀한 준비와 창의적 사고를 동반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런 서울아산병원이 현재 5개년 계획, 소위 '2020 프로젝트' 수립을 위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고령 인구구조가 고착되고 AI(인공지능)가 일반화될 시대에 대한민국 미래의료 좌표를 설정하고 이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商道)를 보면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의 '계영배(戒盈杯)'는 술잔의 7할 이상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리게 만들어졌다. 이는 과욕을 부리지 말라는 것을 경계하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국민들로부터 두터운 신임과 존경을 받고 있는 서울아산병원. 메르스와 대통령 비선진료 사태를 교훈삼아 마련 중인 미래 5개년 계획과 함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7할의 '전략', 그리고 3할의 '자존심'이 어떻게 융합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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