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의대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해진기자
2017.01.16 05:16 댓글쓰기

20:1→6:1→0.9:1. 한 지방의대와 그 부속병원 성적표다. 이 의대는 올해 수시전형에서 무려 20:1의 경쟁률을 보였다. 정시모집에서도 6:1을 기록하며 수도권 의과대학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지난 11월 해당 의대 부속병원 전공의 모집에서는 경쟁률이 0.9:1에 그쳤다. 일부 진료과가 미달되며 정원 확보에 실패한 탓이다.
 

의대 입시전형과 부속병원 전공의 모집은 결이 다른 만큼 서로의 경쟁률을 비교해 크고 작음을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줄어드는 숫자의 현실까지 도외시 하는 것은 곤란하다.
 

입시철 ‘의대 쏠림’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는 현상이다. ‘의대에 몇 명 보냈냐’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가 되다 보니 각 고등학교에서는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진학에 온 힘을 쏟는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교육부에 따르면 매년 2만 명에 가까운 이공계 대학생들이 자퇴를 한다. 대부분 의전원 입학 및 의대 편입을 준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시합격이 발표되면 대학들은 타 학교 의대에 합격한 학생들이 포기한 정원을 정시전형으로 넘기는 이월인원을 계산하느라 바쁘다.
 

그런데 밀물처럼 몰려들던 학생들이 썰물처럼 죄다 빠져나가는 시기가 온다. 바로 전공의 모집 때 이다. 입시철 의대 쏠림이 있다면 전공의 모집시에는 서울대, 아산, 삼성, 세브란스, 서울성모병원 등 소위 '빅5' 쏠림 현상이 발생한다. 최근 10년 간 전체 전공의 4분의 1이 빅5 병원에서 수련을 받았다.
 

자연히 지방병원에서는 미달이 속출한다. 4년째 추가모집에서 조차 비뇨기과 전공의를 확보하지 못한 지방 소재 공공병원은 “같은 지역 대학병원과 모집이 겹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지만 정작 해당 대학병원도 비뇨기과는 미달이었다. “우리 학교 의대생들 다 어디로 갔느냐”는 한탄이 나오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인 셈이다.
 

병원에서 애타게 찾는 의대생들. 그들은 한 번쯤 의대 합격으로 학교 정문 혹은 입시학원이 내건 플래카드에 커다랗게 이름이 새겨졌던 경험이 있다.

주변에서 앞다퉈 자식농사 성공했다고 추켜세워 우쭐해진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뿌듯했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밝을 줄만 알고 한 발 내딛어 본 길 앞이 안개 낀 듯 뿌옇다고 깨닫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의대생들은 진로 얘기를 할 때마다 “선배들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던데...”로 운을 뗀다. 대학병원에는 자리가 없고 개원을 해도 힘들다는 하소연을 전해 듣는다. 졸업만 하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불안감이 커지다 보니 고난의 길보다 남들이 많이 가는 길에 편승하게 된다. 이것이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점은 선배들도 인식하고 있다. 학회마다 병원별 수련과정의 상향 평준화와 적극적 진로지도 마련에 힘을 기울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교 출신조차 붙잡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대학병원들 사정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또 단기적으로 해결되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무거운 숙제다.

지겨운 얘기라고 방치해서는 안 될 일이다. 문제가 서서히 굳어지면 이를 당연시하는 풍조가 탄생하게 되고 그 뒤에 억지로 뜯어내려면 생살까지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피과와 수도권 쏠림 현상. 그 선택권을 쥐고 있는 후배의사들의 탓으로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작금의 의료제도에 대한 천착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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