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 적정성평가 후 쏟아지는 '불만'
학회 '결과 과대평가' 비판-병원계 '수가 인상도 없이 무슨 전담의' 반발
2016.05.17 06:50 댓글쓰기

병원에서 환자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인 중환자실의 민낯이 공개됐는데 관련 학회는 물론 병원들이 강한 거부감을 표하고 나섰다. 

특히 전반적인 병원계 중환자실 상황을 도외시한 채 평가 기준에만 매몰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평가 방식 에 대한 불만이 곳곳에서 제기되는 상황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 15일 전국 종합병원급 이상 중환자실 263곳을 평가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중 1등급을 받은 병원은 11곳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같은 병원 숫자가 과대평가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복지부-심평원-학회 3자 정책협의체 구성" 제안
 

이와 관련, 대한중환자의학회 임채만 회장(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은 1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심평원의 중환자실 적정성 평가결과는 실상보다 높게 평가됐다”면서 “심평원 기준 상 1등급은 유럽과 미국 중환자실 등급(상,중,하)에서 인력요건은 하급, 최소한의 기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임 회장은 “이 같은 중환자실의 심각한 부실은 법령의 부실에서 기인한다. 현행법에서는 ‘중환자실(성인)에는 전담전문의를 둘 수 있다’고 명시돼 있지만 이 문구는 병원들 입장에서는 ‘중환자실에는 전담전문의를 두지 않아도 된다’로 읽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지난 2008년 보건복지부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고시된 중환자실 인력요건에는 ‘중환자실에는 전담전문의를 둘 수 있다’고 명시돼 있으며 현실상 아무런 구속력도 없다.
 

이에 중환자의학회는 “‘전담의사를 둘 수 있다’는 규칙을 ‘전담의사를 둬야 한다’로 강제하고 의사 1인당 30명 이하의 환자, 특히 교육을 담당하는 병원의 중환자실에서는 전담전문의와 환자 비율이 1:14를 넘지 않도록 시행규칙을 변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중환자실 체계는 실질적으로 단일 등급으로 비용 효과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병원 간, 그리고 한 병원 내에서도 중환자실 단위 간 인력 및 시설 상의 등급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채만 회장은 “위중한 환자들이 집중 치료를 받는 중환자실은 갑작스런 상황에 대처하는 의료진 능력에 따라 환자 생사가 오가는 곳인데 병원별, 지역별 편차가 크다”면서 “중환자들은 병원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권역 센터를 중심으로 모두 1등급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회장은 “학회가 여러 통로를 통해 우리나라 중환자들이 처한 위험한 현실을 알리고 개선을 요구해 왔으나
현행 시행규칙과 불합리한 수가 체계 하에서는 근원적인 해결이 어렵다”면서 “1등급과 2등급의 수가 차이가 크지 않고 오히려 1등급을 유지할 때 원가보전율이 더 낮아지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서는 손해를 적게 보려면 낮은 등급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환자실 전담전문의를 두려고 하는 병원이 별로 없다.
 

이번에 1등급을 받은 11곳 상급종합병원 중에서도 전담전문의 한 명당 병상 비율이 세브란스병원 10.3개, 분당서울대병원 11.3개, 삼성서울병원 11.4개, 서울아산병원 12.7개로 나타났다. 반면 지방의 한 대학병원은 32.5병상이었으며, 2등급을 받은 지방 국립대병원은 무려 160개에 달했다. 

중환자의학회는 이번 평가에 대한 후속 조치로 병원 간 그리고 지역별 편차를 줄이기 위해 복지부와 심평원, 학회 3자 정책협의체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학회 주장과 병행해서 병원계도 나름 이번 평가에 대한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공통적으로 현실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불만이 지배적이었다.

이번 중환자실 적정성평가는 인력
·시설·장비에 대해 평가하는 구조부문과 중환자 진료과정, 48시간 내 재입실률 등 총 7개의 평가지표를 반영했는데 11개 병원을 제외한 곳은 인력과 시설 등을 이유로 1등급에 들지 못했다.

"현행 수가로는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 둘 수 없는 실정"

 

이에 대해 2등급을 받은 병원들은 중환자실 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수가 개선이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2등급을 받은 서울지역의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이번 평가 결과는 비현실적이라며 지금의 중환자실 수가가 2~3배 이상 올라야 한다. 그렇지 않고 현행 수가로는 전담의를 둘 수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각 병원마다 소아중환자실, 내과계 중환자실, 외과계 중환자실 등 중환자실 종류가 다양한 만큼 각 중환자실에 전담의 1인을 두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2등급 병원들도 중환자실을 운영하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지만 현재 중환자실 기준을 맞출 수 있는 것은 빅5병원 정도라며 병상당 인력을 따져도 그 외 병원은 현실적으로 조건을 채우기가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번 평가를 계기로 정부도 중환자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2등급을 획득한 또 다른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이번 평가에서 가장 가중치를 둔 부분이 전문의 수와 간호 등급이었다. 이를 채우지 못해 2등급을 받았다평가 결과가 중환자실 인력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면서 더불어 정부의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11곳의 1등급을 받은 의료기관이 나왔다고 해도 국내 중환자실 현황이 사실상 외국의 중환자실 환경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대한중환자의학회장을 지낸 강남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신증수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중환자실의 기본 요건에 대해 정한 것이 있는데 이번 적정성평가 1등급 기관도 사실 그 기준에서는 3등급 밖에 얻지 못한다한국의 중환자실이 제대로 중환자실 환경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시설이나 인력 기준 등에서 여전히 국내 중환자실들이 국제적 기준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며 더욱이 투자가 필요한데 수가 문제가 또 얽혀 있다. 정부가 이러한 현실을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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