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지원 사전조율 관행 명암
허지윤기자
2015.11.24 18:29 댓글쓰기

#1. “외부사람을 받지 않고 원내 인턴만 원서를 쓸 수 있다.” “외부사람이 합격할 경우 폭력과 구타로 스스로 나가게 만들어 주겠다.”

 

몇 년 전 N병원 정형외과 전공의 지원을 희망했던 A씨는 원서접수 과정에서 원내 인턴·전공의로부터 이 같은 협박을 당했다. 전공의 지원을 원천봉쇄 당하자 그는 대한병원협회에 호소했고, 이후 N병원이 전공의 4명에 대해 감봉 3개월의 징계조치를 내리는 것으로 논란은 일단락됐다.

 

#2. "내정자를 뽑기 위한 점수 사정이 있었다. 이에 맞춰 채점하고 미흡한 부분은 총무과에서 맞춘다."

 

2012년 레지던트 부정선발 사건이 불거졌던 S병원에서 근무했던 내부자의 고백이다. 당시 S병원은 재활의학과, 정형외과 선발과정에서 전공의 선발고사 65%, 인턴성적 20%, 면접 10%, 선택평가 5% 비율로 배점기준을 정하고도 객관적 지표상에서 더 좋은 점수를 받은 일부 지원자들에게 불합격을 통보했다.

 

‘해당 과는 애초에 내정자가 있었다’는 소문이 퍼졌고 불합격자들은 부당함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 병원과 법정공방을 다퉜다.

 

이는 수련병원 의국에서 전공의를 임의로 모집하고 사전 선발하는 이른바 ‘어레인지(arrange)‘에서 비롯된 사건들이다. 병원과 구성원이 전공의 선발을 짜고 맞추는 과정 속에서 누군가는 지원할 기회조차 잃게 되고 차별 당하게 되는 폐단을 보여주고 있다.

 

2016년도 전공의 모집을 앞두고 있는 지금 많은 수련병원과 특정 진료과에서는 ‘어레인지’ 관행이 여전한 모습이다.

 

취재과정에서 어레인지 관행으로 인한 ‘해악’보다 ‘이익’이 더 크다는 의견이 팽배했다. 소수의 기회가 박탈되는 측면도 있으나 다수의 수련병원과 인턴이 겪게 될 ‘리스크(risk)’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책이라는 이유였다.

 

W병원 인턴 이 모씨는 “타 병원 출신 인턴 입장에서는 불리할 수 있겠지만 어레인지 제도가 없다면 수 많은 인턴들이 소위 ‘떨턴’(전공의 탈락자)이 돼 군대에 가야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며 “병원 입장에서도 자병원 인턴과정을 수료한 사람이 더 좋을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소수의 피해자는 있기 마련이다. 바로, 지방·2차 병원의 인턴이다.

 

N병원 전공의 조모씨는 “지방 병원 인턴들이 규모가 큰 서울지역의 수련병원 특정과 전공의를 희망할 경우 정보에 취약할 수 밖에 없고 이로 인한 차별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데 이들이 어레인지로 이미 정원이 확보된 의국에 ‘탈락’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원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지원자들에게 실질적으로 주어지는 기회는 한번 뿐이다. 전공의 선발에서 탈락하면 1년을 재수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내 ‘어레인지’ 관행에는 붙을 사람은 일찍 붙고, 떨어질 사람은 다른 진료과로 돌려 지원할 수 있다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또 지원자들이 ‘도전’보다 ‘안전’을 택하도록 만드는 현행 전공의 선발 시스템의 한계와 미흡한 구제책의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다.

 

물론 전공의 임용에 대한 재량권은 수련병원에 있으며 제도와 관행을 만드는 것 역시 의료계 몫이다. 하지만 ‘공정 경쟁’이라는 잣대에서 볼 때 ‘어레인지 관행’은 분명 맹점을 갖고 있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안덕선 원장은 “국내에서 전공의 선발 체계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게 사실”이라며 “ 미국은 공식기관 국립 레지던트 매칭 프로그램이 주관하는 '레지던시 매칭'이라는 체계를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도 우리와 유사한 문제가 있었다가 최근 국가 차원의 지원을 받아 선발 및 수련 방식 등을 체계화했다”고 덧붙였다.

 

공정성이 취약한 선발과정은 소수의 문제일지라도 교육기회의 차별을 초래하며 ‘경쟁’이라는 기능을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없게 만든다.

 

건전한 경쟁에 따른 발전과 성장도 기대하기 어려울뿐더러 전공의 수련의 첫 관문이라는 점에서 수련체계와 문화 전반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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