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기간 단축' 내과 살릴 수 있을까
정숙경기자
2015.11.04 14:22 댓글쓰기

"고양이 목에 아무도 방울을 달려 하지 않는다. 내과학회가 전공의 수련기간을 3년으로 단축한다지만 PA(Physician Assistant) 문제 등 누군가 총대를 메고 나서지 않는한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달 31일. 토요일 늦은 오후까지 진료를 끝내고 학술대회 장소에 모습을 드러낸 내과 개원의들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 보였다.

 

전공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의술의 근간으로 꼽히던 내과를 선택함에 있어 망설임은 크지 않았을 터. 하지만 수 년 전부터 위기감에 엄습하면서 녹록치 않은 환경에 이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져만 가고 있다.

 

그 와중에 대한내과학회 이수곤 이사장(세브란스병원)의 발언이 눈에 띈다.

 

이수곤 이사장은 지난달 31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개최된 내과개원의사회 학술대회에 참석해 "전공의 수련과정을 3년으로 개편하려 한다. 내과 지원을 꺼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너무 긴 수련과정"이라고 의지를 표했다. 

 

사상 초유의 사태로 기록될 만큼 흉부외과, 산부인과, 외과에 이어 내과마저 전공의들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하면서 내과학회가 묘책을 내놓기 위해 지난 봄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개원내과의사회 이명희 회장은 "전공의 감소 대안으로 내놓은게 수련기간 단축과 호스피탈리스트다. 하지만 호스피탈리스트제의 경우 시범사업이 서울아산병원, 충북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신청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현실과의 괴리감이 고려되지 않은 정책이다보니 의욕적으로 추진하고도 기대했던 것만큼 성과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회장은 "호스피탈리스트 시범사업이 활성화 되지 않다는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며 "수련기간 단축도 근본 원인이 아닐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내과 수련과정 자체에 회의감을 느끼고 등을 돌리는 이들이 현저히 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소화기내과 수련을 한다고 했을 때 3년이라는 기간 안에도 내시경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우스갯소리로 "펠로우나 돼야 제대로 된 내시경을 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내과 간판을 달고 개업을 한다고 해도 미래가 보장되는 시절은 이미 오래 전 이야기가 돼 버렸다. 소화기내과를 전공했다고 하면 예전에는 검진센터에서 그나마 일자리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포화 상태다.

 

검진센터 입장에서는 당연히 계약직 의사를 고용하게 되고, 동시에 급여로 1000만원을 원하는 전문의보다 800만원도 마다하지 않는 전문의들을 채용하게 되는 형태를 띄게 되는 것이다.


이명희 회장은 "요양병원에도 내과 의사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보니 고육지책으로 나온게 수련기간 단축인데 분명 과도기다. 젊은 의사들이 개업해서 망하고 선배들이 걷는 길을 보는 후배들은 더욱 더 이 길을 포기하게 되는 것 아니겠나"라고 씁쓸해 했다.

 

게다가 전공의들은 호스피탈리스트 제도가 완전히 정착되면 PA가 더 활성화될 것을 우려해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최근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본원 10개소, 분원 3개소의 각 국립대병원으로부터 PA 인력 현황을 제출받은 결과, 2015년 이들 병원이 운영 중인 PA는 632명에 달했고, 한 명 이상 운영하는 진료과는 모두 39개과로 조사됐다.

 

특히 PA인력을 많이 사용하는 진료과는 외과 22.2%(140명)에 이어 내과가 10.3%(65명)이었다. 흉부외과, 비뇨기관, 산부인과도 PA인력을 많이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의료법 상 PA가 행하는 행위는 불법 소지가 다분하다. 만약 이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라면 대학병원 교수는 물론 전공의들 그 중 누군가는 고발해야 한다. 하지만 PA 숫자는 더 늘어나고 병원 현실은 더 왜곡돼서 돌아간다.

 

일각에서는 "대학교수들과 개원의들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간극으로 내과 전공의 수련 기피 현상에 따른 총체적 문제를 해결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당장 내과 전문의를 따고 개업을 하기조차 절망적이라는 이들 앞에서 내과학회가 내놓은 수련기간 단축 '카드'는 과연 어떠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역사상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내과이지만 전공의, 개원의, 대학교수 모두가 공감하는 대책의 교집합은 어디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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