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구인난 지방 중소병원 '슬픈 단상'
허지윤 기자
2015.08.25 14:44 댓글쓰기

일선 병원계에서 관행으로 자리잡은 병원과 의사 간 이면계약이 결국 법정분쟁으로 비화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007년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모 병원과 신경과 봉직의 오모씨는 네트 방식으로 근로계약을 맺었다.

 

의사가 실제 수령할 총 급여액을 정해 이를 보장해주면서 근로소득세, 주민세, 국민연금보험료, 건강보험료, 고용보험료를 병원이 대신 부담하기로 하고 퇴직금은 받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퇴직한 의사는 ‘병원이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의사 손을 들어줬다.

 

병원은 “오히려 의사가 근로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라며 “퇴직금과 동일관계인 1억6800만원 상당의 제세공과금은 ‘부당이득’에 해당하므로 병원에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의사가 최종적으로 퇴직할 때 발생하는 퇴직금 청구권을 사전에 포기하도록 하는 것은 현행 법규에 위배돼 무효”라고 밝혔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도 "병원들의 잘못"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일노무법인 손강용 노무사는 “잘못된 병원 노무관행 중 하나는 봉직의에 대해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 대신 세금 및 4대보험료를 병원에서 지원하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상호 편의 차원이라고 하지만 이는 포괄임금제도에 의하지도 않은 채 법정 제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잘못이 있을 뿐 아니라 봉직의 소득을 임의로 낮게 책정해 탈세도 가능케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선 중소병원, 특히 지역권 병원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병원 역시 네트계약이 다양한 문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이미 병원계에 뿌리 내린 관행이 됐을 뿐더러 네트계약을 하지 않을 경우 의사들이 병원에 들어오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 중소병원의 경우 구인난 가중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수도권으로 가려는 의사를 붙잡기 위해 각종 근로조건을 달아 계약을 맺게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A병원 관계자는 “봉직의 중에는 한군데서만 일하는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다. 고소득에 따른 세금 부담을 비롯해 복잡한 문제들을 병원에 전가하고 싶어 네트계약을 요구하는 사례도 많다”고 설명했다.

 

병원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이면계약의 위법성을 알지만 의사를 구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지역 중소병원들은 이 방법을 동원해도 의사 채용은 늘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지방 중소병원들이 이면계약의 유혹을 떨쳐버리기에는 의사를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현실이 야속하기만 하다. "오죽하면…"이라는 중소병원 원장의 한숨은 의사 구인난의 슬픈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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