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하멜른市 시장과 韓 메르스 병·의원
2015.08.04 17:31 댓글쓰기

[수첩]독일의 소도시 하멜른은 사람들을 공격하는 쥐들 때문에 곤혹스러웠다. 쥐를 없앨 방도를 찾지 못하던 이곳에 마법 피리를 든 허름한 차림의 낯선 남자가 나타났다.

 

이 남자는 쥐를 모조리 없애 주는 대가로 시장에게 금화 천 냥을 요구했고,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그가 마법 피리를 불자 마을 곳곳에 숨어 있던 쥐들이 나타났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쥐들을 강가로 몰아 물에 빠뜨려 버렸다.

 

시장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돈의 일부만 주고 사나이를 내쫓아 버렸다. 화가 난 사나이는 얼마 후 하멜른에 나타나 다시 피리를 불었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그의 곁으로 모여 들었다. 사나이는 아이들과 함께 외딴 동굴로 사라졌다.  

 

친숙한, 그림형제의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줄거리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로 최근 개봉한 영화 ‘손님’의 모티브가 돼 다시 회자되고 있다.

 

정부가 내 놓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피해 보상안을 바라보는 의료기관의 심정이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와 매한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을 부정할 수 없다. 희생을 무릅쓰고 감염병 대응에 나선 결과가 경영난으로 인한 도산 위기이기 때문이다.

 

병원경영연구원이 지난 6월 18일~30일까지 2주간 '6월 메르스 사태 병원수지 영향조사'를 실시한 결과 3~5월 평균 수익 대비 해당 기간 수익은 7039억5500만원 감소한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건강보험 진료비만을 기준으로 집계한 것으로 비급여와 부대사업 수입까지 산출할 경우 그 피해액은 더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정부가 확정한 보상액은 의료계가 산출한 피해금액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500억원에 불과하다. “제2 메르스 사태가 발생해도 희생을 기대하지 말라”는 분노가 일고 있는 이유다.

 

민간 의료기관은 감염병 대응에 있어 부실한 공공의료체계를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공공에 대한 지속적 투자 부재에 따른 국가의 업보를 대신 떠안은 것이다.

 

감염병 대응이 주 역할인 전국 33개 지방의료원 중 음압병상을 갖춘 곳은 1/3에 불과하다.  영리병원을 허용한 OECD 19개국의 평균 공공병상비율이 77%인 반면 한국은 12%에 그친다.

 

공공병상 수를 60%로 늘리는 과감한 투자를 하지 못할 것이라면 메르스와 유사한 사태가 재발했을 때 공공의 틈을 민간 의료기관의 자발적 희생에 기대어 메워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위해 민간 의료기관의 감염병 예방에 대한 설비 및 인력 투자는 필수적이지만 도산 위기 의료기관에는 너무나 가혹한 부담이다.

 

개인의 희생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의무만을 강요하는 정부의 행위는 하멜른 시장의 염치없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다.

 

복지부는 지난 주 추경예산이 부족할 경우 예비비 확보 등 보상액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손실보상 실태조사를 통해 정확한 손실분 규모를 파악한다는 계획이다.

 

구멍 난 감염병 대응시스템을 떠받치고 있는 의료기관의 희생이 제대로 평가받기를 의료계는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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