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덫에 걸린 한국 의료산업
2015.07.07 18:15 댓글쓰기

[수첩] #. “한국 의료시설 및 성형외과 진료를 최대한 삼가고 홍콩 의료인들도 한국 의료계와의 교류를 잠시 중단해 달라."(코윙만 홍콩 식품위생국장, 지난 6월 3일 입법회 출석 발언)

 

#. “메르스 사태로 효율적인 보건 시스템을 가진 세계 5위 국가로 꼽힌 한국의 의료시스템에 결함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케이죠 타케미 일본 참의원, 지난 7월 2일  ‘아시아태평양지역 국제보건 국회의원 포럼’ 참석 발언)

 

#. “올해 6월 외국인 환자 평균 예약부도율 42%. 1~5월 10%였던 것에 비해 32%p 증가. 1번 확진환자 발생 이후 한 달 간 외국인환자 유치 실적 역시 전년 동기보다 5%p 감소.”(한국보건산업진흥원, 지난 2014년 기준 해외환자 유치 상위 30개 기관 조사 결과)

 

공들여 쌓은 탑이 이리도 쉽게 무너질 줄 누가 예상했을까. 성장 일로를 걷고 있던 한국 의료산업이 '메르스 쇼크'에 멈춰서 버린 모양새다.

 

의료산업은 명실상부 정부가 미래 먹을거리로 삼고 의욕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분야다. 대통령 해외순방 성과로 IT·자동차 대신 병원의 해외진출이 거론되기 시작한 지 오래다. 지난 2010년 58개에 불과했던 의료수출 건은 2014년 125건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2017년 162개 의료기관 수출과 50만명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할 경우 8조원 이상의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할 것이라는 정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장밋빛 로드맵은 메르스 사태로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신성장 동력의 중심축이었던 의료기관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감염의 온상지’라는 오명은 삼성서울병원을 비롯한 국내 병원이 짊어지고 가야 할 업보가 됐다.

 

‘신뢰’라는 무형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 불가능하다. 의료서비스라는 재화의 특성 상 ‘진실의 순간’, 즉 환자 접점 중 단 하나의 질 관리에 실패해도 서비스 가치는 ‘0’으로 수렴된다.

 

의료시스템 전반의 문제가 전세계에 공개됐으니 천문학적 손실은 예상 수순이다. 연구중심병원을 주축으로 한 보건의료 R&D의 지속도 불투명하다.

 

삼성서울병원 A교수는 “메르스 손실 복구에 몇 십년이 걸릴 판인데 미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할 여력이 있겠냐”며 “대한민국 의료산업이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다급해진 정부는 메르스 사태가 종식을 고하기도 전에 의료수출 정책 추진에 다시 불을 지폈다.

 

중국·동남아·미주(중남미)·중동 국가 별 맞춤 비즈니스 모델 개발 및 수출 지원, 법·제도 개선, 전문 인력 진출, 금융·투자 등에 관한 전략 수립을 위한 자문단 회의도 개최했다.

 

물론 8000조원 세계 보건의료시장 선점을 위한 각국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뒤처지면 곤란하다는 정부의 논리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설사 맞춤형 의료수출 전략이 수립된다 하더라도 이번 사태로 드러난 한국 의료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에 대한 대수술 없이 효과가 있겠느냐는 우려는 감출 수 없다.

 

제2, 제3의 메르스 쇼크에 애써 쌓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흔들리는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작비금시(昨非今是), 즉 어제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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