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신설과 견지망월(見指忘月)
2015.05.28 00:09 댓글쓰기

견지망월(見指忘月). 손가락 보느라 달을 잊는다. 본질을 외면한 채 지엽적인 것에 집착함을 뜻하는 성어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은 왜 보고 있나?" 성철 스님의 법어로도 유명하다.

 

본질을 보지 못하는 우매함을 꼬집는 말이지만, 곧이곧대로 달을 보기가 영 개운치 않아 일부러 손끝에 담긴 의도를 살피는 경우도 있다.

 

최근 발의된 ‘국립보건의료대학 및 국립보건의료대학병원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둘러싼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과 의료계의 행보가 꼭 그렇다.

 

이정현 의원은 국립보건의료대학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부족한 공공보건의료 인력을 전면에 내세웠다.

 

의사인력의 수도권 집중화 및 의료취약지 근무 기피 심화, 의과대학 여학생 비율 증가에 따른 공공의료 인력 감소 등으로 공공의료를 담당할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연구결과를 인용해 지금도 1200~2020명의 의사가 부족해 1년에 100명씩 양성하고 6년 뒤에 졸업해 활동을 한다 하더라도 20년 이상이 걸린다며 사안의 시급성 또한 강조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지만 그 순수성에 의문 부호를 다는 이들이 적잖다. 지난해 7·30 재보궐선거 당시 그가 내걸었던 핵심 공약은 ‘공공의료 인력 양성’이 아니라 ‘의대 신설’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역구에 의대를 신설하기 위해 ‘공공의료 인력 양성’이란 우회로를 타 명분과 실익을 얻으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지난해 이정현 의원은 예결산특별위원회에서 보건복지부 장옥주 차관에게 "부족한 의료인력과 공공의사 양성을 위해 의대 설립이 필요하다고 보지 않느냐"고 질의하며 이 같은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공공의료 인력 양성이란 표면적 목적이 의대신설이란 실질적 목적의 수단이 된 상황에서 그가 발의한 법안의 진정성을 느끼기 어렵다.

 

의료계 대응 역시 마찬가지다. 대한의사협회는 해당 법안이 발의되기도 전에 “비현실적 대안으로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법 제정을 통해 공공의료 인력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의사 수급과 보건의료체계 혼란만을 초래하며, 의료취약지의 의료접근성 문제도 해소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기존의 체계를 십분 활용해야 하고, 의사들이 의료취약지의 의료기관 근무를 꺼리는 원인을 해소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설령 국립보건의료대학을 설립한다고 가정할지라도 이 의원의 분석과 같이 의사가 배출되기까지 최소 20년 이상이 소요되므로 막대한 예산만 낭비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의사 인력이 충분하다는 의협의 주장에서 의료취약지 등에 투입될 ‘공공의료 인력 양성’에 대한 고민은 없고, ‘의대 신설’을 반대하는 반복돼 온 논리만 보인다고 하면 무리한 해석일까.

 

‘국립보건의료대학 및 국립보건의료대학병원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논의하면서 달(月)은 의료계의 고질적 문제인 공공의료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인력 양성이어야 한다.

 

공공의료인력 양성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거나, 의료계 이권에 좌우되면 민간의료기관에서 도외시하는 영역의 분야는 꾸준히 도태돼 국민 건강을 위협할 것이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은 왜 보고 있나?" 타계한 성철 스님이 이정현 의원과 의료계 모두에게 던지는 따끔한 질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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