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모는 '아청법'
2013.10.11 10:25 댓글쓰기

#오래 전 A씨는 서울의 꽤나 큰 종합병원에서 산부인과 검진을 받았다. 자궁 건강상태를 확인해보는 검사였는데, 초음파 검사 중 적잖은 통증과 불편함을 호소했다. 검사에 애를 먹던 병원 관계자는 “(성관계)경험이 없느냐”며 짜증을 냈고, A씨는 극심한 수치심을 느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B씨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대형병원에서 산부인과 검진을 받았는데, 베드에서 일어난 후에야 수련의가 동석하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자신의 동의 없이 발생한 진료환경에 큰 불쾌감과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이 경우 ‘성추행’에 해당할까. 만약 그렇다면 의료진은 평생 ‘성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혀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환자가 진료 중 성적 수치심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제재가 없다면 이 같은 일은 진료실 곳곳에서 또 다시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문제다.

 

성범죄자가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에 10년간 취업이 제한되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이른바 '아청법'의 취업제한 대상에 의료기관이 포함되면서 최근 의료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아청법 제56조에 따르면 아동·청소년대상 또는 성인 대상 성범죄자는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에 10년간 취업이 제한된다. 사실상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셈이다.

 

또한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이 환자를 대면하지 않는 병리과 등에도 취업할 수 없고, 취업 제한 대상에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까지 포함시킨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26일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이 개최한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의 합리적인 개선방안’ 토론회에서는 의료계, 법조계, 시민단체가 일제히 “의사들에 과중한 처벌을 내리는 법률”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성범죄 경중에 상관없이 10년간 의료기관 취업과 개설을 금지하고, 성인 대상 범죄까지 아청법에 포함시킨 것은 아동·청소년 보호라는 점에서 법적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 임병석 법제이사는 토론회에서 “아청법은 성범죄자로부터 아동 및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이지만, 법에서는 성범죄를 행한 의료인을 모든 기관에 취업할 수 없도록 했다”며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만 취업 제한을 두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누구를 위한 법률인지를 다시 살펴봐야 하며, 무엇보다 진료 환경에서 발생하지 않은 성범죄까지 취업 제한을 두는 것은 과잉처벌이라는 것을 되짚어봐야 한다.

 

법률에 개선·보완사항이 있다면 정부가 국민들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적극 반영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아청법에 의료인이 해당된 것이 성범죄로부터 성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억울한 의료진들 역시 생겨나서는 안 된다.

 

진료 중 ‘오해’와 ‘의도적 고소’로 인해 평생을 ‘주홍 글씨’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야 할 의사들이 생겨난다면 추후 더 큰 문제가 초래될 수 있다. 결국 의사들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법률 개정이 어렵다면, 억울한 의료진이 나오지 않도록, 법적 처벌에 앞서 이의신청 및 사전 조율 제도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고의적인 고소 등으로 의료진을 곤경에 빠뜨리는 신고자가 있다면 엄벌로 다스려져야 함이 마땅하다.

 

그리고 진료 시 불가피한 신체 접촉에 대해서는 사전 동의를 구하거나, 특수한 경우에는 동성의 간호 인력이 진료 및 처치 시 참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관련기사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