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란 직업과 예기치 않은 응급상황
2013.07.17 12:11 댓글쓰기

아시아나 보잉 777기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착륙 사고가 났던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은 “소녀 같은 여승무원이 울면서 승객들을 업고 뛰어다녔다”는 목격담을 전했다. 이 승무원은 경력 19년차 캐빈 매니저 이윤혜씨였다.

 

그는 피 흘리는 승객을 업고 밖으로 빠져나왔다가 검은 연기에 휩싸인 비행기로 뛰어들기를 여러 차례 거듭했다. 이씨는 꼬리뼈를 다친 채 부기장과 함께 기체를 마지막으로 빠져나왔다. 샌프란시스코 소방국장은 “12명 승무원들이 대형 참사를 막은 영웅”이라고 했다.

 

지난 6월26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 강남구청역 앞에 한 40대 남성이 쓰러져 있었다. 마침 차량으로 근처를 지나던 서울KS병원 김도환 내과 과장은 의사의 직감으로 그가 단순 취객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김 과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미 심호흡이 멎어 있는 상태였고 얼굴색도 사망 직후의 환자와 유사했다”고 설명했다.

 

김도환 과장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쓰러진 남성의 몸을 인도로 옮기고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지 10여분, 쓰러진 남성은 기침을 하며 호흡을 시작했다.

 

검은 연기에 뒤덮인 항공기에서 모두가 탈출할 때 거꾸로 그곳에 뛰어든 사람, 사람이 쓰러져 있어도 나서는 이 없고 자칫 송사(訟事)에 휘말릴 수 있는데도 주저하지 않는 사람, 바로 이 승무원과 의사다.

 

하지만 승무원과 마찬가지로 의사들이 투철한 사명감으로 무장한다 해도 현실은 사명감을 뒷받침해 주지 않는다. 의사가 사람을 살린 일이 화제가 된 것도 우리나라의 제도 자체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잘못해 의식을 잃었던 남성이 회복하지 못해 사망할 경우 김 과장은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 실제 의사의 본분을 다했지만 응급처치 과정에서 환자 상태가 악화되거나 사망에 이르게 될 경우 보호자와 갈등을 겪은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다보니 의사들 사이에서는 "외면이 오히려 낫다"는 자조적 말도 회자된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에 의해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위험에 빠지지 않는 상황인데도 구조하지 않는 경우 즉, 구조 불이행한 경우 프랑스는 5년 이하의 구금 및 50만 프랑의 벌금형을 내린다. 동구권 국가인 폴란드도 3년 이하의 금고나 징역형에 처하고 있다.

 

독일, 포르투갈, 스위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 러시아, 루마니아, 헝가리, 중국 등의 국가과 미국의 여러 주에서도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에 의해 구조 거부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영국 다이애나 왕비가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다이애나 비를 도와주지 않고 사진만 찍은 파파라치가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에 의해 처벌을 받은 일도 있다.

 

국내에서도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취지를 수용해 2008년 5월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역시 선한 취지의 행위를 장려하기 위한 면책 규정으로 위급한 상황에서 응급처치시 문제가 발생할 경우 '형사상' 책임은 묻지 않는다. 외국과의 차이점이라면 외면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법에서도 의료인은 예외로 돼 있어 민형사상 책임을 완전히 피할 수 었다는 점, 그리고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을 경우 유가족과 합의를 해야 하는 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쉬움의 목소리가 크다. 때문에 법률 개정과 제도 보완이 절실한 상황이다.

 

의사라는 직업은 남의 생명을 구하는 직업이다. 길가다가 쓰러진 남성이 있다고 해서 모른척하지 않고 재빠르게 생명을 구하려고 하는 모습은 의사라는 직업에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사들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법과 제도 또한 그에 알맞게 마련돼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야만 김도환 과장 같은 사례가 흔치 않은 화제가 아닌 당연한 인간의 도리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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