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부외과 의사로 산 10년의 치열한 분투기
정의석 교수(상계백병원 흉부외과)
2015.12.20 20:00 댓글쓰기

“침착하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사실은 내가 무서워 죽을 것 같았다.”

 

구멍 난 환자의 심장이 내뿜는 피를 손가락으로 막으며 당장 수술실에 교수가 도착하길 간절하게 바라던 흉부외과 전공의의 고백이다.

 

최근 상계백병원 흉부외과 정의석 교수[사진]는 전공의 시절부터 메스로 환자의 가슴을 가르는 서전으로서 병원에서 보낸 10년의 흉부외과 의사로서의 삶을 풀어낸 ‘심장이 뛴다는 말’을 집필했다.

 

책은 중환자실 한 쪽에 쪼그려 앉아 끄적이던 메모부터 수술 이후 밤새 당직을 서고 2시간여쯤 쪽잠을 자고 일어나 문뜩 든 생각을 정리한 기록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정 교수는 “흉부외과에서 나보다 수술을 더 잘하거나 지식이 뛰어난 의사들은 많다”며 “의학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일상을 보여주고 일종의 에세이”라고 말했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흉부외과 의사가 책을 발간하기 까지는 수술과 회진 등을 오가는 빡빡한 스케줄 사이 틈틈이 기록해 온 일기와 메모들의 공이 컸다.

 

그는 “원래 글을 쓰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며 “유럽 박물관에 가보면 수백년 전의 쓰레기통, 우체통, 편지 등이 전시된 것처럼 기록으로 일상의 파편들을 보관하고 뒤돌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생(生)과 사(死) 가운데에 놓인 환자, 이를 지켜보는 보호자,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의사의 이야기를 통해 해피엔딩도 세드엔딩도 없는 인간의 생로병사가 정 교수가 독자에게 건네는 메시지다.

 

정 교수는 “흉부외과 의사로서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더 인간의 생로병사에 다가가 있는데 책은 이를 솔직하게 전하는 매개체”라며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겪어보지 않기 때문에 막상 본인 혹은 지인의 죽음 앞에 괴리를 느끼는데 조금은 죽음을 사실적으로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정 교수는 책 속에서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에서 흉부외과 의사로 맞닥뜨려온 죽음에 대해 진솔하고 덤덤하게 써내려갔다.

 

그는 “다들 편안한 죽음을 원하지만 편안한 죽음이라는 단어자체가 역설이다”라며 “두렵고 무서운 죽음에 대처하는 방법 같은 건 어차피 없다. 살아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든 더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수술 후 환자가 깨어날 때까지 항상 불안”

 

책 속의 기록들 사이에는 정 교수가 환자의 심장을 뛰게 하기 위해 흉부외과 의사로서 치열하게 싸워온 시간들도 녹아있다.

 

정 교수는 책 속에서 “어제부터 좋지 않던 환자가 밤새 잘 이겨내더니 갑자기 숨을 1분에 60번 쉬며 힘들어했다”며 “방에 들어와 나도 1분간 60번 숨을 쉬어봤다. 많이 힘들었다. 힘들어서 자꾸 부끄러웠다”고 전했다.

 

여전히 그는 “수술 후엔 환자가 깨어날 때까지 항상 불안하다. 내가 의식하지 못한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환자가 눈을 뜨고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때까지 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고 말한다.

 

이 같은 기록들이 쌓여가는 가운데 그는 환자의 피를 뒤집어쓰고 탈의실에서 왈칵 눈물을 쏟던 전공의에서 수술을 끝내고 보호자들을 마주하며 ‘나는 좋은 의사인가’라는 자문을 던지는 흉부외과 의사가 됐다.

 

정의석 교수는 책을 집필하며 “스스로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정 교수는 “처음 기록을 시작하던 전공의 1년차의 의사가 지금은 수술실에서 수술을 집도하는 서전이 됐으니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도 든다”며 “반대로 과거에는 느꼈던 안타까움에서 지금은 무뎌진 것은 아닌지 아니면 너무 예민해진 것은 아닌지 현재를 뒤돌아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하루를 보내는 의료진들 역시 이 책을 통해 자신들의 병원 생활을 공감하고 과거의 경험을 되짚어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정 교수의 바람이다.

 

그는 “병원에서 하루를 보내는 의료인들에게는 오히려 책의 내용들이 대수롭지 않은 경험들일 수 있다”며 “바라는 점이라면 책을 통해 ‘나도 이랬었지’라는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정의석 교수는 ‘심장이 뛴다는 말’ 발간을 계기로 이달부터는 조선일보 문화면에 칼럼형식의 글을 게재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다른 작가들과 함께 여행과 관련한 책도 집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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