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의료인 취업 제한하되 10년 기간은 조정'
헌법재판소 '제한 자체는 '합헌'
2016.04.01 11:41 댓글쓰기

성인 대상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이 10년 동안 진료를 할 수 없도록 한 이른바 '아청법' 상 취업제한 조항에 제동이 걸렸다.  

헌법재판소는 31일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 상의 관련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번 결정이 취업 제한 자체가 정당하지 못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범죄의 경중, 재범 가능성에 상관 없이 일률적으로 10년이라는 기간 제한을 둔 것이 의료인의 직업 선택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것이다.

취업 제한 기간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다면 얼마든지 아동·청소년을 잠재적 성 범죄의 위험에서 보호하면서도 직업 선택권 자유을 침해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헌재 결정의 취지다.


이번 결정은 아청법상 의료인의 취업 제한에 관한 최초의 판례로 현재 계류 중인 다른 사건에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性범죄 의사 6명 “10년 진료 금지하면 뭘 해 먹고 사나” 


이번 위헌확인 심판은 성인 대상 성범죄로 형을 선고받은 의사 5명, 치과의사 1명 등 의료인의 청구로 이뤄졌다.

심판대 위에 오른 조항은 2012년 12월 18일 개정 전의 아청법 제44조1항과 개정 후의 같은 법 제56조 제1항이다. 해당 조항은 성범죄자의 의료기관 취업 및 개설, 운영을 10년 동안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청구 취지에 따라 해당 조항 본문 중 ‘성인 대상 성범죄로 형을 선고받아 확정된 자’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만 위헌 판단이 이뤄졌다.


의사 A씨는 준강제추행죄로 지난 2012년 10월 23일 경 300만원의 벌금형이 확정됐다. 공보의로 인천 소재 백령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경찰서장으로부터 취업제한 대상자로 통보받고, 소방안전본부로 근무지가 변경됐다.
 
의사 B씨는 2012년 11월, C씨는 이듬해인 2013년 1월 강제추행죄로 벌금 300만원형이 각각 확정됐다. B씨는 의료기관 개설을 준비하던 중 자신이 취업제한 대상자임을 알게 됐고, C씨는 근무하던 요양병원에서 해고됐다.
 
내과의사 D씨는 2014년 강제추행죄로 징역 8개월이 확정돼 성남시장으로부터 자진폐업신고 안내서를 받고 자신이 운영하던 의원 문을 닫았다.
 
의사 E씨는 업무상위력 등에 의한 추행으로 같은 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진행하던 중 지난해 10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치과의사 F씨도 업무상위력 등에 의한 추행으로 지난해 11월 벌금 700만원 형이 확정되자 헌재에 호소했다.


이들 의료인은 “의료기관은 보호자나 보조 의료 인력이 상주하는 곳이어서 성범죄 발생이 어려운데, 의료인에 의한 성범죄 가능성을 막연한 추측으로 당연시하고 있다”면서 “성범죄로부터 아동·청소년을 보호하는 데 적합한 수단인지 불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의료인은 “가벼운 범죄자까지도 모두 10년간 취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가혹하고, 성인을 대상으로 한 진료까지도 전면적으로 금지함으로써 취업제한 대상 기관을 의료법상 모든 의료기관으로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있어 침해 최소성 원칙에 위반 된다”고 말했다.


이어 “성인 대상 성범죄자가 아동·청소년에게도 같은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있는지 여부는 불확실하며,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자의 경우에는 10년이라는 취업제한에 의해 침해되는 사익이 더 크므로 법익 균형성에도 어긋나고 직업 자유를 침해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기관 믿고 이용하려면 취업제한 불가피하지만 기간 조정 필요”


헌재는 성범죄 의료인의 진료를 제한함으로써 아동·청소년을 잠재적 성 범죄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아청법의 입법 목적에 부합하는 적절한 제재 수단이라는 것이다.


헌재는 “의료인의 자질을 일정 수준으로 담보하도록 함으로써 아동·청소년을 잠재적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고, 의료기관의 윤리성과 신뢰성을 높여 아동청소년 및 그 보호자가 이들 기관을 믿고 이용하거나 따를 수 있도록 할 수 있기 때문에 취업 제한을 두는 것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성범죄 의료인의 취업을 제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바라봤음에도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은 10년이라는 일률적인 제한 기간 때문이다.


헌재는 “성범죄 전력만으로 그가 장래에 동일한 유형의 범죄를 다시 저지를 것을 당연시 하고 있다”며 “재범 위험성이 없는 자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10년이 지나기 전에는 결코 재범 위험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헌재는 “의료기관의 윤리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공익인 것은 맞지만 직업 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어 우리 사회가 청구인들에게 감내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부당하다”고 밝혔다.


헌재는 “성범죄 전과자의 취업 제한에 있어서 재범 위험성의 존부와 정도에 관한 구체적인 심사 절차가 필요하다”며 “이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현행 10년을 취업 제한 기간의 상한으로 두고 법관이 개별적으로 심사하는 방식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시했다. 


헌재는 독일의 입법례를 선례로 들었다. 독일의 경우 취업 제한을 성범죄자로 한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법관의 판단 절차를 요구하고 있다.


헌재는 “형사사건 담당 판사는 그 사건 심리하는 과정에서 피고인 재범 위험성 누구보다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며 “취업 제한 필요성과 기간 등을 심사하기에 가장 적합한 지위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헌재 결정 취지와 유사하게 과거 형량에 따라 취업 제한 기간을 합리적으로 적용하려는 논의는 있었다.

새누리당 박인숙의원이 지난 2013년 11월 성인 대상 성범죄의 경우 금고형 이상이 확정될 경우에만 10년 동안 취업을 제한한다는 내용의 아청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당시 박인숙 의원은 개정안에 벌금, 금고, 징역 등 형이 무거워질수록 취업 제한 기간을 오래 두는 등 10년 일괄 적용에서 단계적 적용으로 기간을 조정한다는 내용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14년 4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한 차례 논의된 이후 계류돼 있다.

헌재가 이번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10년 취업 제한 제도의 합리적 교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한 만큼 향후 형량과 재범 위험성에 따라 제한 기간이 어떻게 조정될 지 추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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