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을 처음 진단받게 되면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가족 중에 당뇨병 환자가 한 명도 없는데 이상하다거나, 저희 집안은 모두 당뇨병이어서 어쩔 수 없다는 것 등.
정말로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어떤 병에 걸릴 운명을 가지고 있는 걸까?
1983년부터 2008년까지 인류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전세계적으로 당뇨병 환자가 7배 증가했다. 그 사이에 우리 유전자에 어떤 큰 변화가 생긴걸까? 일반적으로 인간 유전자 코드는 2만년마다 0.2% 정도 변화한다.
한 세대에 걸쳐서는 변화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운명을 타고 났다기 보다는 그동안 바뀐 라이프 스타일을 원인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운동량, 음식, 환경 오염에 대한 노출, 스트레스 같은 외부 환경이 당뇨병 환자가 7배로 증가한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유전적인 요인은 전혀 없는 걸까? 일반적으로 부모가 모두 당뇨병인 경우 자녀가 당뇨병에 걸릴 가능성은 30%정도다. 부모 중 한 명이 당뇨병인 경우는 15%정도로 보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부모의 생활습관을 공유하는 부분도 영향이 있을 수 있지만, 유전적 요인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
지난 2011년 독일에서 발표한 한 연구에 따르면 제 2형 당뇨병과 관련된 유전자가 적어도 36개 이상이라고 한다. 이 논쟁의 결론은 황희 정승만큼이나 허무하다. 타고나는 것과 환경 둘 다 중요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유전정보의 총합을 유전체, 즉 게놈이라고 한다. 반대로 우리가 노출되는 모든 환경, 다시 말해, 식습관 및 음주나 흡연 등을 포함하는 생활습관, 외부 환경, 스트레스, 경제능력, 장내세균, 호르몬, 운동량 등을 모두 포함해 엑스포솜(exposome)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이 엑스포솜이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렇게 엑스포솜이 유전자 발현에 작용하는 것을 후생유전학이라고 한다. 그것은 좋은 것일 수도, 나쁜 것일 수도 있다. 유럽에서 쌍둥이 4만5,000여 쌍을 분석한 결과 암(癌) 발생에 있어서 환경 요인이 더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유전적 요인에 의한 위험 증가도 적지는 않았다. 전립선암, 대장암, 유방암의 경우 대략 20~40% 정도는 유전적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오바마 前 대통령이 2015년 백악관에서 정밀의학 이니셔티브를 발표할 때 이런 말을 했다. “의사는 언제나 모든 환자가 독특한 존재임을 인지했으며, 개인에 맞는 최선의 치료를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우리는 혈액형에 맞춰 수혈을 한다. 혈액형은 중요한 발견이었다. 우리가 유전자에 맞춰 암을 치료 하는 것이 간단해지고, 표준화 된다면 어떻게 될까? 개인에게 맞는 정확한 약물의 용량을 계산하는 것이 체온을 측정하는 것처럼 쉽다면 어떻게 될까?”
"후생유전학, 즉 엑스포솜 통해 유전체에 긍정적 영향 미칠 수 있도록 노력"
우리는엑스포솜에 대해서는 비교적 쉽게 인지하고 조절할 수 있다. 담배연기를 피한다거나, 꾸준히 운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게놈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어쩌면 이것은 환경이나 생활습관과 달리 미리 안다고 한들 바꿀 수 없는 부분이어서 모른척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데, 우리가 자신의 유전체에 대해 알고 있다면 엑스포솜을 통해 유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염증 반응과 관련된 어떤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경우 전립선암 발생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오메가-3 지방산이 부족하면 위험도가 더 증가하고, 반대로 충분하면 위험이 감소한다는 식이다.
혈액 응고와 관련된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경우 혈전색전증 위험이 증가할 수 있지만 토코페롤이 이를 감소시켜줄 수도 있다. 물론 오메가-3나 토코페롤은 다들 좋다고 하는 만큼 굳이 유전자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많이 먹어도 문제가 없다.
그런데 꼭 그런 경우만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의 음식이 다른 사람에게 독(毒)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특정 상황에서는 비타민C를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도 있다. 비타민C를 운반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의 특정 위치에 변이가 있는 사람이 자궁경부암을 유발하는 인유두종 바이러스 16에 감염되면 비타민C가 두경부 암의 발병률을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런 경우 이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접종함으로써 위험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코엔자임Q10을 합성하는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경우에는 고지혈증 약을 복용할 경우 근육병증 발생률이 증가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고, 별도로 코엔자임Q10을 보충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카페인을 분해하는 능력이 감소된 경우에는 카페인 섭취를 줄이는 것이 좋겠다. 해독과 관련된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에 문제가 있는 경우 십자화과 채소가 이 유전자의 발현을 도울 수 있다.
결국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전적 특성을 알게 된다면 그에 맞는 엑스포솜을 이용해 건강에 더 가까워지고, 질병과 조금 더 멀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한 번쯤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유전적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