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환자 보호자인 딸이 무섭다"
서대철 강남베드로병원 신경중재과장
2024.04.22 05:22 댓글쓰기

[특별기고] 어느 TV 인터뷰에서 보호자 중 ‘삼촌이 제일 무섭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외과의사들 말이다. 


소가족이 일상화된 요즘의 집안 구성원은 아니다. 하지만 산업화 시대에는 여러 역할을 하던 삼촌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환자 보호자 역할을 과감히 떠맡는 것이었다.


병원 로비에서 소란을 피우는 경우는 환자에게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뭔가를 요구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 들 중에는 평소 가깝게 지내지 않던 삼촌이나 집 나간 큰아들, 별거한 남편 등도 있었다. 


필자도 누군가의 삼촌이므로 집안 특정 사람을 욕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 공개적인 병원 소란 빈도가 줄어들었다. 삼촌 역할이 사라진 때문일까? 아마도 의료진이 해야만 하는 설명의무를 철저히 하고 만일 문제가 생기면 증거를 제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보호자들에게 설명을 해도, 못 들었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설명 과정을 비디오로 녹화도 한다.


전후 세대 (After-war generation, 일명 베이비붐세대)가 병원에 올 때는 부모를 포함한 가족들이 같이 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최근 들어서는 젊은 딸들이 동행하는 경우가 많다. 


딸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어떻게 사냐는 말은 이런 데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보호자 여러 역할 중에서 딸들은 아마도 케어를 해주는 'care-providing'(간호담당) 보호자일 것이다. 특히 고위험군 질환일수록 엄마의 병간호 부담은 크다.


요즘 직장여성이 늘어나면서 직접적으로 간호는 안해도 엄마 진료 동선을 딸들이 책임을 지는 경우가 많다. 


딸들이 부모를 대신해서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최선의 안내를 한다. 최근에는 SNS 영향을 받아 질병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동향을 파악하고 부모 외래진료 시 담당 의사와의 대화를 주도한다. 


기세 등등한 딸들은 질문도 많다. 최대한 친절히 답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두 대답하기가 힘들다. 그녀들의 질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령환자 자녀들, 규모 작은 병원에서 까다로운 입장 표출 많아”


이들 딸들의 특징은 대학병원에서는 5분도 안 되는 진료는 잘 감내하면서도 규모가 작은 종합병원에서의 입장 표시는 까다롭다. 충분한 설명과 질의응답이 있은 연후에도 결정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머니 표정은 그냥 시술을 받고 싶은 표정이지만 딸들 위세에 눌려 뭐라고 말을 못한다. 꼼꼼한 예약을 거쳐 소위 잘 나가는 대학병원 진료도 가봐야 하는 절차가 남았기 때문이다. 


딸들의 매서운 입매에서 그 결기가 느껴진다.


그런 딸들을 따라다니며 고생을 하는 환자분들 중에는 하루빨리 입원해서 시술을 해드리고 싶은 경우도 있지만 딸들 압력으로 대기가 많이 걸리는 대학병원으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적잖게 보았다. 


힘들어하는 어머니 표정에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것이 눈에 보이지만 딸들 판단은 냉정하다.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긴다면 그 많은 간호의 몫은 모두 딸들 차지가 될 것이므로 엄마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대학병원에서 취소된 외래 빈자리를 뚫고 들어가는 것은 이러한 무용담의 클라이막스(절정)에 속한다. 가족들과 상의를 한 후 다른 병원으로 가겠다는 경우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은 종합병원 규모와 시설 및 시스템이 대형병원에 비해 취약할 거라는 생각을 넌지시 비추면서 떠날 때는 마음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필자가 환자를 위해 기울였던 노력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것이다. 다른 많은 의료진들이 노력을 한 것처럼, 필자도 누구 못지않게 어려운 환자들에 대해 많은 도전과 연구를 했다. 

“중소병원도 많은 장점·우수한 의료술기 보유했지만 강조 못하는 아쉬움”

대학병원에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새로운 의료기술을 개발하고 치료 성적을 높이기 위해 열정을 바쳤다고 외치고 싶은 것이다. 

더욱이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뇌동맥류 치료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해 뇌동맥류 시술을 외래기반으로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KJR, 2022) 

전신마취 수술 후 바로 퇴원하는 당일수술센터의 여러 과정을 눈여겨보던 필자는 무증상 비파열뇌동맥류도 당일시술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일 시술이 중요하다기보다는 다른 문제만 없다면 당일 퇴원도 활 수 있을 정도로 뇌동맥류 시술이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울러 병원 장비가 대학병원 못지않게 잘 갖춰져 있으며 과간 협진을 통해 이루어지는 맞춤진료 시스템은 대형병원보다 확실한 장점이 있다는 점도 말해야 되나 싶을 때, 딸들은 다른 병원으로 향할 채비를 하고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우리 병원에서도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것이지만 굳이 떠나가겠다는 결정을 보면서 다른 중소 종합병원이나 지방병원 의사들도 비슷한 심정일 거라는 느낌도 든다. 좋은 치료를 잘 받기 바라는 기원을 보낸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왜 그렇게 까지 해야 되냐고 꾸짖고 싶은 생각도 나지만 어떡하겠는가?

진료 지연으로 인해 치료 시기를 놓쳐 만에 하나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결과는 필자 책임일 수 도 있다는 과잉 자책을 하면서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다. 설득력이 부족했고 적극적으로 말리지도 못하고 만 것이다.

어린 시절에 항상 다니던 동네의원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따뜻하게 배 한번 만져주면 감쪽같이 낫던 의원들이 기억난다. 

요즘도 동네의원을 찾지만 건강검진으로 질병이 발견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병의원으로 가는 과정이 생략되고 바로 대형병원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 중간이 없어진 게 아닌가 싶다. 

여러 병원을 다니는 소위 '병원 투어', 혹은 의료쇼핑은 수도권 대형병원에 집중되는 '의료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한국 의료가 직면한 어려움 중 하나인 의료 과소비로 이어질 수도 있다.

‘평균의 실종’ (트텐드 코리아 2023) 이 의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중간이 사라지는 양극화가 의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중(中)을 지키기 위해서는 돈독한 믿음(中實)과 빈 배와 같이 자신을 비우는 것(中虛)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옛 말씀이 현실에서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하지만 의료에 종사한다면 한번 되새겨 볼만한 구절인 것 같다.

의료 양극을 달리는 과정에는 SNS가 톡톡히 한몫을 하고 있다. 가성비를 추구하는 SNS 속성상 의료에서는 트렌드 케치(Trend catch)에 예민한 딸들이 선봉에서 깃발을 휘두르는 것이다.

간혹 차분하고도 이해심 많은 듬직한 딸이 같이 와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엄마를 바라보면서 좋은 답(答)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충직한 딸들을 보면 빈마지정 (牝馬之貞, 암말이 유순하고 올바른 德(덕)에 의해 힘든 일을 잘 참아서 바르게 이루어 낸다)이라는 옛말이 생각난다. 

엄마 입장을 헤아리고 병원 여건을 살펴 필자의 병원에서 기꺼이 시술을 받겠다고 결정할 때면 시술의사로서 각별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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