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R&D 제도 혁신과 (기초)의학연구원 신설"
선경 특임교수(학교법인 경희학원/前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
2023.10.04 05:37 댓글쓰기

[특별기고] 늘어나기만 하던 정부 R&D 예산 등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받고 있다. 


대한민국 총 R&D 투자규모는 지난 2020년 기준 93조1000억원으로 세계 5위 수준이었다. GDP 대비 총 연구개발비 비율은 4.81%로 이스라엘과 선두를 다툴 정도로 세계 최고다. 


정부 R&D 투자는 2023년 31조1000억원으로 국가 총지출의 5%를 차지했다. GDP 대비 R&D 투자는 1.38%로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었다.


그러나 규모의 성장에 비해 낡은 관행과 비효율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고 결국 내년 예산에 반영됐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R&D 시스템 개선'이 이번 구조조정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갑작스런 연구비 삭감, 열악한 기초의학 연구 환경 더 악화 등 부작용 우려"


2024년도 정부 실질 R&D 예산은 27조7000억원으로 금년대비 10.9% 감소했다. 구조조정을 통해 생명의료 분야 연구비가 줄면서 열악한 기초의학 연구가 더욱 침체될 것으로 우려된다. 


연구비 구조조정에 대해 일부 공감하는 부분은 있으나 갑작스런 연구비 삭감은 과제에 참여하고 있는 연구자의 고용 안전성을 낮추고 장기적으로는 우수인재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 


자원 빈국인 대한민국의 경쟁력인 지식 자원 및 인적 자원이 계속 육성될 수 있는 보완책이 필요하며, 구조조정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고 탈출구가 있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이번 내년도 예산 삭감 등 윤석열 정부의 과학기술 철학은 ‘R&D를 R&D답게 혁신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혁신’의 본래 의미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invention’이 아닌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융복합해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innovation’ 개념이다. 


그 연장선 상에서 ‘(기초)의학연구원’ 설립을 추천한다. 의학 연구는 단순히 의사나 의대 교수들 만의 몫이 아니고 전형적인 다학제 융복합을 통한 혁신(innovation)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금년 8월 정부가 발표한 ‘정부 R&D 제도 혁신 방안’과 ‘예산 배분-조정 결과’에 대해 몇 가지를 제언한다.


"R&D 관리 투명성‧전문성 제고 병행 어려운 현실 이해 필요"


첫 번째 제도 혁신 방안에서 선진국과의 협력 중에 해외 연구기관이 우리 R&D에 직접 참여할 경우 결과물의 지식재산권(IP)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다. 


국가 R&D 예산은 대한민국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것이니 소유권은 당연히 우리나라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으로 보는데, 그 부분에 대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또 평가제도 혁신을 위해 데이터 기반 R&D 관리를 통한 투명성과 전문성 제고는 중요하다. 그러나 연구비 관리기관 입장에서 볼 때 투명성과 전문성은 두 마리 토끼를 좇는 것과 같다. 


특히 분야별로 연구자 인력층이 두텁지 않은 나라에서 전문성을 강조하면 학문 근친교배 현상이 일어나고, 투명성을 강조하면 엉뚱한 평가위원이 과제를 심사하게 되는 상황이 빈발할 수 있다. 


투명성과 전문성을 모두 갖추면 좋겠지만 부득이 하나만 갖추라면 투명성 즉, 공정성을 선택하게 되는게 공공기관 현실이다. 


대표적인 게 ‘상피제도’다.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이것을 완화한다면 예상되는 부작용을 어떻게 최소화할지 우려스럽다.


물론 IRIS 2.0을 통해 외국 평가위원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지만 자료 보안과 지식 유출 문제도 걱정된다. 


"공공투자, 직접 성과보다는 민간투자 마중물 역할 바람직하고 '4P 평가지표' 도입 제안"


두 번째 예산 배분-조정에서 R&D 투자 비효율을 개선하려면 ‘효율’ 즉, 정부 R&D 투자 성과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공공투자 역할은 기초연구와 실용연구 사이에 놓인 소위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극복하기 위한 가교 기능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공공투자는 직접 성과보다는 민간투자를 유도하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정부 R&D 성과는 기존의 3P 평가지표(publication, patent, product) 외에 민간 투자 유발 효과를 계량화시켜 '4P 평가지표'를 제안한다.


R&D 사업에 카르텔이 존재한다는 정치권의 시각은 결국 국민 시각이 반영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현 상황은 자성(自省)을 바탕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집단지성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충격을 최소화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할 주무부처를 격려하면서 머리를 맞대고 긴밀한 상의와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