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복지법 논란과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김창윤 교수(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2017.03.26 21:02 댓글쓰기

금년 5월 시행을 앞둔 정신건강복지법 강제 입원 규정에 대해 정신과 학계와 정부 사이에 논란이 뜨겁다. 

보건복지부는 학계의 문제 지적에도 아랑곳 않고 무리해서라도 법 시행을 강행할 태세다.  

세계보건기구를 언급하며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원칙을 따르겠다는 복지부의 입장 표명은 정신의학계의 합리적 비판을 외면하고, 국제기구 권위를 빌어 여론을 호도한다는 인상을 준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만 따르면 강제입원 요건과 절차에 관한 논란이 모두 해결되는 것 일까.


강제 입원에 따른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제도적 장치는 독립된 심사 기관에 속한 전문가가 입원을 결정한 의사와는 별개로 직접 환자를 대면 조사하는 입원 적합성 심사라 할 수 있다.  

이는 새로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에 입원 적합성 심사 위원회가 신설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입원 적합성 심사위원회가 무늬만 그럴듯하고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입원 적합성 심사가 사실상 형식적인 서류심사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입원 적합성 심사를  법조인 또는 전문의로 구성된 전담 인력이 판정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면서 원칙대로 모두 대면조사로 하자는 것이 의사들의 요구 사항이다. 

지금처럼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민간병원 의사를 아무나 무리하게 입원 판정 의사로 동원하는 것은 판정에 따른 책임 소재가 명확치 않고, 입원 판정 전문성과 공공성을 담보하고자 하는 법의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  

공정하고 독립적인 심사위원회에서 입원 심사를 제대로 하라는 정신과 의사들의 요구는 법 시행을 반대하기 위한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국제적 원칙이기도 하거니와  2014년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유엔 장애인 권리위원회의  최종 권고 사항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 강제입원 일부 법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결정에서도 위헌 사유로 지적되기도 한 바 있다.
 

세계보건기구 권고에  따라 유엔 장애인권리 협약을 따르겠다고 하는데 강제 입원  폐지도 수용할까 우려된다. 장애인권리협약 원문에는 강제 입원을 금지해야 한다는 명시적 문구는 없으나, 2014년 유엔 장애인 권리 위원회 일반 논평에서 강제 입원 폐지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 의사 결정 능력의 장애로 결과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더라도 대리 결정은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장애란 이유로 차별받으면  안 된다는 조항을 근거로 드는데, 동어반복적이라 논리적이지 않다. 

정신과 진단이 모호하고 강제 치료는 치료 효과에 대한 경험적 근거가 없다는 점도 이유로 들고 있으나 이는 의학적으로 사실과 다르다.  정신질환을 의학적 모델이 아닌 사회적 편견의 산물로 보고, 의학적 치료를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로만 보는 부정적 인식에서 비롯된 비합리적 주장일 뿐이다.
 

정신의학계는 장애인권리협약에 대해 인권 보호 취지는 마땅히 존중 돼야 하나 강제입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재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 적법 절차를 강조하고 있으나 강제 입원 자체를 금하는 나라는 없다. 독일 뿐 아니라 2016년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에서도 강제입원 자체는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있다. 

판단력의 장애를 보이는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거부할 경우 증상이 악화돼 심각하게 환자 이익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에도 본인 의사를 존중해 내버려두는 것이 윤리적 관점에서 옳은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복지부는 헌법재판소 판결과 달리 강제입원 자체를 금지하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무조건 따를 것인지, 그리고 정신과 의사들의 합리적 비판에서 어떤 부분이 유엔 원칙에 위배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할 것이다. 

막연하게 유엔 장애인권리협약만을 내세워 여론을 호도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정신의학계의 합리적 비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최적의 치료를 제공하면서 인권도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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