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등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정책적 제언'
홍윤철 교수(서울대의대 예방의학교실)
2016.10.04 07:30 댓글쓰기

가습기 살균제로 초래된 비극은 안전장치가 없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부각시켰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발생한 사유는 살충제, 소독제, 항균제와 같은 살생물제(biocide)에 대한 안전성을 판매자가 입증하지 않아도 제품의 판매가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가습기살균제 외에도 소비자 시장에서는 많은 종류의 생활화학제품들이 시판되어 사용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생활화학제품들은 산모나 어린이 등 건강영향에 민감한 집단들까지 사용하기 때문에 보다 철저하고 책임 있는 제도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또 다른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다.
 

지난 5월에 환경부는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막기 위하여 항균, 살균 기능 제품의 인체 유해성 여부를 조사하는 내용의 ‘살생물제 관리 개선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앞으로 2년 동안 살생물 화학물질과 제품에 대해 전수 조사한 다음에 안전성이 확인된 물질만 제품 제조에 사용하도록 하고 유해물질이 들어 있는 제품은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살생물제품 허가제’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사실 이러한 계획이 잘 수행되고 지켜진다면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어떻게 계획이 수행되는지는 지켜보아야 한다. 안전성을 확인하는 규정이 있다고 실제로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편 환경부는 화학물질의 관리감독을 위하여 ‘화학물질평가와 등록에 관한 법’을 제정한 바 있고 2015년 4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위해우려제품 안전표시기준이 적용되는 생활화학제품을 고시하고 있는데 세정제, 방향제, 소독제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되는 제품들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방향제는 일반가정, 사무실, 차량 등 일정한 생활공간 내에서, 혹은 의료, 섬유, 신발 등 생활용품에서 좋은 냄새를 발산시켜 사용자의 기분을 상쾌하게 하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제품이다. 이 법은 이와 같이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쉽게 노출되는 물질과 제품에 대한 법적인 관리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생활화학물질로 인한 위해를 줄이고 안전을 강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위해우려제품으로 지정되고 또 제품에 위해 우려제품이라고 표기됐다 하더라도 시장에서 상품으로 팔리는 데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이를 확인하고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 책임은 소비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즉 소비자가 주의해서 제품에 표기된 내용을 읽어보고 알아서 잘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예를 들어 탈취제에 들어있는 물질은 폼알데히드, 메탄올, 산화에틸렌, 나프탈렌, 벤젠, 글리옥살, 트리클로로에틸렌 등 상당히 많다. 이러한 물질들이 탈취제의 성분으로 들어갈 수 있고 그 내용이 표기돼 있다고 해도 소비자가 쉽게 알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이러한 제품을 사용해서 생기는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좋은 정책이 아니다.
 

이 때문에 여러 가지 법적인 조치에도 불구하고 생활화학제품 사용으로 인한 건강문제의 발생을 모두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재발방지를 위해서 법과 제도, 기구에 대한 정비도 필요하지만 실제 더 효과적인 것은 환경성질환에 대해 모니터링하는 체계다.

모니터링은 실시간과 정기적인 모니터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실시간 모니터링은 응급적인 상황에 적합하고 정기적인 모니터링은 정확한 평가를 위해 필요하므로 현재는 둘 다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실시간 모니터링은 우선 서울의 주요 대학병원급에서 환자발생자료를 모아서 평상시보다 다르게 나타나는 양상을 분석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정기적인 모니터링은 질병관리본부 등에 국가중앙기관에서 전국민건강보험자료를 이용하여 병원이용양상을 분석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문제가 발생했을 때 손해배상제도를 통하여 피해자의 피해를 보상하는 제도를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법적인 의무조항을 모두 준수하였다면 생활화학제품을 만든 제조사에게 제재나 불이익처분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환경오염피해보상보험 등의 제도를 통하여 피해자가 구제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사실 환경부에서는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을 입법화하여 이를 제도화 해나가는 과정에 있다.

이와 같은 제도는 피해자의 구제뿐 아니라 기업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측면에서도 조기에 정착시켜나갈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를 시행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는 생활화학제품의 사용과 피해자의 건강문제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피해자들이 이러한 인과관계를 증명하여 적절한 보상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인과관계를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들의 평가체계를 만드는 일도 시급히 해야 할 일중의 하나이다.
 

현재 서울대학교병원에는 가습기 살균제나 생활화학물질로부터 초래될 수 있는 질병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부서가 없다.

서울대학교 병원에 환경의학과가 만들어져서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환경보건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령탑의 역할을 하면서, 환경성질환에 대한 모니터링뿐 아니라 환경오염 피해사례에 대한 인과관계 평가 등을 수행한다면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환경보건문제의 해결을 위한 커다란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