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 삶의 질 돌봄, 통합지지의료로 해결'
김종흔 국립암센터 지원진료센터장
2016.08.15 20:39 댓글쓰기

“항암치료가 끝나면 날아갈 것 같았는데 막상 끝나고 나니까 더 막막해요. 이제부터 뭘 먹어야 되는지, 운동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일은 언제부터 다시 할 수 있는 건지요?”

암 치료가 일단락 된 생존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외과, 정신건강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재활의학과, 가정의학과 등 여러 명의 전문의와 함께 국립암센터 유방암 생존자 다학제클리닉에서 진료할 때 늘 나오는 질문이다.


보건복지부와 국립암센터가 2015년 12월 발표한 녝년 암발생률, 암생존율 및 암유병률 현황’에 따르면 암을 경험한 사람들의 생존율은 69.4%이며 대한민국 암 생존자 수는 약 140만 명에 이른다.

앞으로는 가족 중에 암 환자 한 명 없는 가정이 드물어지게 될 정도로, 암은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가 차원에서 암의 예방과 검진, 첨단치료와 호스피스 등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암 검진을 확대시행하고, 산정특례로 암치료비를 획기적으로 낮추었다. 수도권의 대형병원들은 앞 다투어 암병원을 개원하고 정부에서는 전국에 지역암센터 개소를 지원함에 따라 국민들은 수준 높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완화의료전문기관을 지정하여 임종환자 죽음의 질에까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대한민국의 암관리 정책은 성공적이었고, 실제로 이제는 암에 걸렸다고 외국에서 치료 받겠다는 환자를 더 이상 보기 어렵다.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사각지대가 있으니, 암 환자의 삶의 질에 대한 돌봄이 그것이다. 일차적인 치료가 일단락 된 후 생존자들이 겪는 괴로움은 다양하다.

미처 가시지 않은 통증이나 피로, 재발이나 전이에 대한 두려움과 우울, 암의 합병증이나 치료의 부작용으로 얻게 된 신체적 장애는 물론이고 실직과 재취업의 어려움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과 사회적 고립의 문제도 외면할 수 없는 실정이다. 종종 뉴스에 나오는 암 투병 중 자살 문제는 그들이 겪는 고뇌의 처절함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일 것이다.
 

우리도 암 생존자들의 신체․정신적인 증상을 완화하고 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지지의료(supportive care)에 관심을 돌릴 때가 됐다. 이미 통증의학/정신종양학/암재활/종양심장학/호스피스 등 각 분야(multidisciplinary) 전문가가(specialist) 환자를 중심으로(patient-centered) 협력해(coordinated) 포괄적인 증상조절 및 문제 해결(comprehensive)을 모색하는 지지의료팀이 생겨나고 있다.

국립암센터는 지난 2014년부터 통증다학제클리닉을 개설, 해결되지 않은 복잡한 증상을 5명의 지지의료 전문의가 모여서 진료하고 있다. 더 나아가 지지의료팀이 수술/항암화학요법/방사선치료 등 치료진과 공동으로 진료를 봄으로써(shared care) 지지의료가 기존의 종양학에 유기적으로 통합될 수 있는(integrated)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지지의료나 생존자 관리는 인력이나 시설 측면에서 아직 수가를 통한 수익성을 보장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민간에서 활성화되기 전에 정부가 주도해서 정책적으로 추진해나갈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을 들 수 있다. 일본에서는 2005년 전국의 암환자들이 모여 ‘일본의 암의료를 바꾸자, 환자와 가족 모두 손을 잡자’라는 슬로건을 걸고 암환자 집회를 개최한 바 있다.

정부는 당시 ‘환자 중심의 정보센터를 조기에 만들어 달라’는 대집회 호소문을 받아들여 같은 해 전국 암진료 제휴거점병원에 ‘암상담지원센터’를 설치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2007년 제3회 대회에서는 암 진료에 종사하는 모든 의사에게 완화의료 교육을 시켜달라는 호소문이 발표되었다.

현재 거점병원의 암상담지원센터는 전국에 약 400개소에 달하며, 암전문상담원들이 배치되어 전문적인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암환자를 진료하는 모든 의사는 의사소통 기술훈련과 완화의료/정신종양학 연수를 받게 됐고, 연수를 수료한 후에는 완화의료 수가를 받을 수 있게 됐다.

2014년에는 거점병원의 모든 암 환자에게 고통 선별검사를 하는 것이 필수항목이 됐다. 환자가 호소하기 전에 미리 통증과 정신적 고통을 스크리닝하도록 하였으며 이미 88%의 거점병원이 이를 도입한 상태다.

암환자 대집회는 올해 12회째를 맞이하며, 일본의 암난민 문제 등 암의료 전반의 문제 해결에 환자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일본 정부는 2007년 4월 암대책기본법을 제정하고 신체증상 완화 전문의사와 정신증상 완화 전문의사 및 간호사 등으로 구성된 완화의료팀에 진료가산점을 적용했다. 2012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제2기 암대책추진기본계획에서는 전체목표의 하나로서 ‘암에 걸려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 구축’을 내걸었다.

또한 ‘암 진단시부터의 완화의료의 추진’이 중점과제로 선정되었다. 일본 국립암연구센터는 2013년 암대책정보센터 내에 암생존지원연구부를 설립하여 생존자 문제 해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으며, 2015년에는 사회와건강연구센터를 설립하여 삶의질을 연구하는 건강지원연구부를 두었고, 같은 해에 부속 중앙병원 내에는 지지요법개발센터를 설치하여 활발한 진료/연구/정책 면에서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립암센터에서도 최근 ‘통합적 지지의료(integrated supportive care) 추진단’을 개설하여, 우리 실정에 맞는 지지의료 모델을 개발하고자 한다. 암 환자와 가족이 갖고 있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니즈를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여러 부문의 지지의료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고 있다.

암 생존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지역사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므로 병원 기반의 돌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향후 지역사회에 설립될 통합지지센터를 통하여 지역 특성에 맞는 지지의료를 개발 보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곧 발표될 제3기 암관리종합계획에서도 국가 차원의 암 생존자 지원이 중요한 화두로 포함돼 있다고 한다.

바야흐로 암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시대에 암 환자와 가족을 어떻게 서포트해야 할까? 진료실에서 늘 답답함을 느껴왔던 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암관리 정책에서 무엇이 중한지, 정부와 의료계가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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