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대학병원장의 ‘애환(哀歡)'
조홍래 울산대병원장
2016.07.08 12:25 댓글쓰기

울산대학교병원장이란 중책을 맡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병원장 취임 전 교육연구부장, 기획실장 등 주요보직을 맡아 전임병원장을 보필하며 병원경영과 병원장의 역할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중책을 맡고 보니 의사결정에 있어 더욱 신중하고 균형감을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랐다.

병원장 취임 초기 울산대학교병원은 의료 질과 양적인 부분에서 큰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었다. 지난 2007년 이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전국 병원에 대한 치료성적을 공개하기 시작했는데 울산대학교병원은 매년 암 수술 등 중증질환에 대한 평가결과 대부분 1등급을 받았다. 또 일부 분야는 서울의 대형병원보다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객관적인 자료가 공개되면서 환자와 지역주민 사이에 병원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 쌓여갔다.

뿐만 아니라 2010년 KTX 울산역 개통을 앞두고 지역사회에서 울산 환자들이 서울과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갈 것이라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지역의료계가 모두 긴장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염려할 만큼 환자 유출은 없었다. 이에 따라 병원장으로서 무엇을 할지 확신이 섰다.

가장 우선 과제는 증가하는 환자를 수용할 수 있도록 부족한 의료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해 잠시 주춤한 병원증축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는 것이었다.

전임 병원장님 시절 첫 삽을 뜬 신축암센터 건립공사가 현대중공업의 경영환경 변화에 따라 건축이 일시적으로 보류돼 있었다. 신축암센터의 성공적인 건립은 병원장으로서 나의 첫 시험무대였다.

신축 암센터는 당초 부족한 병실확보를 위해 450억원 규모로 건립을 계획했으나 검토과정에서 기존 건물에 대한 리모델링 공사비를 포함해 2,500억원 규모로 예산이 5배 가량 늘어났다.

향후 10~20년 후를 봤을 때 기존 본관 건물 수술실만으로는 늘어나는 환자를 감당할 수 없고, 그렇다고 수술실을 본관과 신관에 각각 두고 운영하는 것은 인력운영 및 부대비용 살펴봤을 때 효율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부의견을 정리해서 재단에 보고를 했다. 국내는 물론 세계 경제가 전체적으로 암울한 상황이다 보니 당초 계획보다 훨씬 많은 예산이 투자되는 만큼 재단 승인이 가능할까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병원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신 정몽준 명예이사장님(당시 이사장)과 재단의 배려로 신축암센터 공사는 계획대로 추진됐다.

"암센터 신축하면서 규모 시설도 중요하지만 지역주민들 신뢰 얻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사실 규모가 크고 시설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 환자로부터 신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신축암센터가 준공되더라도 규모와 시설 면에서 서울의 대형병원과 비교했을 때 울산지역 환자의 역외 유출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보다 지역주민과 환자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병원평가 결과 발표로 인해 병원 위상이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울산지역 의료 인프라는 서울 등 다른 대도시에 비해 부족했다. 암을 비롯해 다수의 중증질환환자들이 타지역 대형병원을 찾아 떠나고 있었다.

환자 유출을 막고 지역의료기관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지역내에서 우리 스스로의 목소리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정부가 인정하는 지역거점병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먼저 시작한 것이 정부가 선정하는 울산지역암센터 사업을 유치하는 것이었다. 병원내에서 이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적임자를 찾아 추진단을 구성했다.

일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당시 관련법상 지역암센터는 국립대병원만이 참여할 수 있었으며, 2006년을 마지막으로 사업이 중단된 상태였다. 당연히 이와 관련된 예산이 없었으며, 우리 병원이 아무리 발을 굴러도 정부와 지자체 어느 누구도 이 사업을 추진할 명분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순 없었다. 병원의 미래가 달려 있기에 방법이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울산지역 국회의원 중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시겠다는 분이 계셨다.

그 동안 준비했던 사업계획서를 들고 찾아가 그 동안의 진행 실적에 대해 경과보고를 드리고, 정부가 지원하는 보건의료국책사업 대상을 지금처럼 국립대병원으로 제한할 경우 국립대병원이 없는 울산광역시는 향후에도 그 어떠한 사업도 지역에 유치할 수 없음을 설명했다.

그리고 많은 피해를 감수하면서 국가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한 울산시민들이 정작 국가로부터 차별적 대우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국립대병원으로 제한된 관련법을 개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2010년 관련법이 개정됐다. 지역암센터 사업에 사립대병원도 참여가 가능해졌다.

2011년 드디어 울산대학교병원이 울산지역 최초의 보건의료국책사업인 울산지역암센터로 지정받았다.

지역암센터를 시작으로 현재 울산대학교병원은 보건복지부 지정 권역외상센터, 신생아집중치료센터,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 소아전용응급실, 호스피스완화병동, 권역응급의료센터 울산금연지원센터, 그리고 환경부가 지정하는 아토피환경보건센터로지정받았다.

특히 생의과학연구소가 한국학술재단으로부터 중점연구소로 지정되는 기초의학연구 분야에서도 큰 발전을 가져왔으며, 이를 기반으로 2016년 들어 울산광역시, 미래창조부와 연계해 울산과기원과 손을 잡고 국내 최초로 ‘울산 게놈 1만명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처럼 다양한 국책사업을 유치함으로써 울산대학교병원은 지역내에서 발생하는 암을 비롯한 중증환자 치료와 울산지역 특성을 고려한 주요 질환연구와 예방적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신축암센터 준공과 크고 작은 보건의료국책을 하나 둘 유치하면서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근본적으로 울산지역 환자의 역외 유출을 막고 지역의료계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은 지역내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장에 취임하면서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역 병·의원을 찾아 지역의료발전과 상생의 길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고 참여를 독려했다. 이러한 생각에 대부분의 병·의원이 동의했다.

책임과 역할을 나누기 위해 울산대학교병원이 앞장서야 했다. 지역의료계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1997년 대학병원으로 전환되면서 미뤄왔던 상급종합병원 승격을 추진했다. 2년 간 전 직원이 합심해 철저히 준비한 끝에 2015년 비로소 울산지역 최초로 상급종합병원으로 승격했다.

"적정진료 원칙 지켜가면서 환자와 직원, 궁극적으로 국민 건강 길라잡이 역할 충실"

울산광역시는 상급종합병원과 2차 종합병원, 그리고 1차 의원급 의료기관이 개체수가 이상적인 피라미드 형태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지역 의료기관이 서로 협력한다면 중복투자로 인한 비용부담은 줄이면서 병원이 가진 전문성을 살려 경쟁력 있는 병원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올해 초 정부기관 산하 전문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한 ‘2015 한국 의료 질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울산광역시는 전국 1위를 차지하며 의료 질 부문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통계자료와 병원을 이용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확인한 객관적인 자료다. 결과에 따르면 울산광역시의 경우 8개 조사항목 중 환자안전과 적시성, 의료접근도 부문에서 전국 평균 값보다 월등히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의료전달체계가 지역 내에서 안정화된다면 지역의료발전과 환자 만족도는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울산대학교병원 최초로 3연임이라는 영예를 안고 지난 5년 반 동안 쉴 새 없이 달려왔다.

병원장이기 이전에 의사로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것은 환자 안전과 함께 환자가 불이익을 받는 진료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병원장이 된 후 가장 경계했던 것이 부당진료와 과잉진료였다. 이러한 원칙과 철학이 울산대학교병원의 성장동력이다.

지금까지 모든 교수진과 직원들이 신념처럼 지켜온 적정진료 원칙이 앞으로도 영원히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울산대학교병원은 아직도 많은 성장과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 역시 매순간 주어진 소임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환자와 직원, 나아가 국민건강을 위해 정진해 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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