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리의사로 걸어온 나의 길 그리고 병리과 미래
이용희 주임교수(아주의대 병리학교실)
2016.06.07 21:10 댓글쓰기

얼마 전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여학생의 모임에 갈 기회가 있었다. 학생들은 전공할 과의 선택에 대해 궁금해 했다. 나의 경우 의대 학생시절 병리학 강의는 재밌기도 했지만 재미없는 시간도 꽤 많았다.

그러나 본과 2학년 선택실습에 병리학을 선택했고 그것이 중요한 계기가 된 것 같다. 질병에 대한 지식을 얻고 다인용 현미경에 둘러앉아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질병 조직 유리슬라이드를 보니 참 재미있는 전공과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본과 4학년 강남 세브란스병원으로 임상실습을 나갔는데 우연히 선택실습 지도교수님을 마주쳐 인사를 드리니 차 한 잔 마시라고 권면하시며 이런저런 의사생활 및 의대생들의 이야기를 마치 언니처럼 소소히 나눠 주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병리학교실에는 참 훌륭하고 좋은 선생님이 많이 계시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4학년 학생시절과 인턴 때 나는 정신과, 가정의학과, 병리과를 놓고 무슨 과를 전공할 것인가 고민했다. 그런데 정신과 임상실습으로 정신분열증(schizophrenia) 환자를 담당해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아 제외시켰고 가정의학과는 전국에 있는 각종 병원에서 수련 받아야 하는 시스템이 너무 힘겹게 느껴져서 제외했다.

그렇게 하여 최종 지원한 병리과에서 4년간의 전공의 과정을 수료하고 3년간의 임상강사 과정을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수료했다. 임상강사 시절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심장 질환에 관련된 병리학 공부(특별하게는 선천성 심장질환에 관련된 공부) 및 부검 심장을 공부할 특별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후 차 의과대학 분당차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산부인과 및 여성관련 많은 질병을 접하며 부인과병리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해외연수도 부인과병리와 관련하여 하버드의대 부속병원인 보스턴 ‘브리검 여성병원’ 디렉터인 ‘크리스토퍼 폴 크럼’ 선생님의 리서치 펠로우(research fellow)로 방문교수 과정을 밟았다.

크럼 선생님은 참 열정적인 분이셨고, 정교수이며 디렉터인 분이 몸소 랜턴 슬라이드 프로젝터(lantern slide projector)를 들고 다니며 열심히 강의하시고 여러 가지로 배울 점이 많은 교수님이었다.

병리학교실에는 크럼 교수님 외에도 부인과병리를 전공하는 교수가 7명 정도 있었는데, 부인과 병리 안에서도 또 다른 부전공(자궁경부, 질, 회음부, 자궁내막, 난소, 태반, 나팔관, 태아 및 유소아)을 가지고 있는 젊은 교수들이었다.

크럼 선생님은 이 교수들을 총괄 지휘하며 디렉터로서 교실을 이끌어가는 존경스럽고 멋있는 교수님이셨다. 그를 보며 디렉터는 각 교수의 장단점을 잘 파악해 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또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스턴에서 연수를 하면서 유방암 변이유전자(BRCA mutation)가 있는 여성의 예방적 난관난소절제술 표본(prophylactic salpingo-oophorectomy specimen)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것이 기회가 되어 이들 검체를 이용한 연구들을 진행하였고 이 연구를 통해 현재 난소에 가장 흔하고 치명적인 고등급 장액성 난소 암종(high grade serous carcinoma)의 기원이 난소뿐만 아니라 나팔관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병리학은 여러 가지 임상 및 기초연구를 하는데 있어 무척 중요한 근간이 되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여러 가지 암 및 다양한 질환을 치료함에 있어 맞춤의학(personalized medicine) 및 표적치료(target therapy)라는 영역이 큰 화두가 되고 있다.

많은 종류의 암과 질환에 있어서 각 환자의 유전자 변화에 맞게 유전자 이상을 찾아내 이들 변화에 맞는 치료 약제를 선택하고 투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치료에 있어서 유전자 변화를 알아내는 것 또한 병리의사들과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 의사들이 힘을 합쳐 발전시켜 나가야 할 중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병리의사가 전공의 수련 후 나아갈 수 있는 분야로는 법의학자로 살아가는 길(대학교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법의 부검의, 개업의로서의 법의 부검의), 독성병리학자(toxicology), 중소병원의 병리전문의, 대학교수, laboratory center에서 진단하는 전문의 등이 있겠다.

나의 남편은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의인데 요즈음 병리과 의사인 나를 많이 부러워한다. 임상의로 진료하는 의료 환경이 요즈음 그다지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병리의사로 일을 하면서 한 번도 병리를 전공한 사실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다.

전공과 선택을 고민하는 의대생과 인턴에게 병리학이 재미있고 전공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분야이니 병리과와의 연구 또는 관여되는 일들에 참여도 해보고 병리학에 관심도 가져보고 지원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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