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우리나라 의료서비스가 좋은 이유'
조 정 차장(SBS 보도국)
2014.01.06 00:19 댓글쓰기

 

나라가 시끄럽다. 민영화를 반대하며 철도노조가 역대 최장기간의 파업을 강행했다. 의료민영화 문제를 놓고서는 의사들과 정부가 한판 붙을 태세이다. 이쪽저쪽 귀를 기울여보면 당장 우리 의료계가 붕괴되고 폭발할 지경이다.


그러나 지난주 회사가 지정한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나는 빠르고 군더더기 없는 서비스에 또한번 만족했다. 아직 이런 생각이 남아있는 건 2010년까지 4년 동안 프랑스 특파원 생활을 하며 접한 그 나라 의료서비스 수준 때문이리라. 의료체계 개선이라는 큰 담론은 다음 기회에 토론하기로 미루고 그냥 재미삼아 제 얘기를 들어보시길.


#에피소드 1
파리의 유일한 한인 치과의사인 J선배가 식사자리에서 황당한 일이 생겼다고 말문을 뗐다. 처음 보는 교민이 몇 주간 복잡한 충치 치료를 받았는데 돈이 없다며 진료비를 못 내겠다는 것이다. J선배는 공공의료체계가 잘 갖춰져 있는 프랑스에서 장기체류 허가까지 갖고 있는 사람이 왜 프랑스 공공병원에 가지 않고 개인병원에 왔느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대답은 뜻밖이었다. 빈곤층이 거의 무료로 갈 수 있는 공공병원에 갔는데 기다리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의사의 수준과 서비스가 엉망이었다는 것이다. 차라리 잘 하는 개인병원에서 아픈 치아부터 고치고, 진료비 오리발을 내미는 파렴치한이 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공공병원에서 얼마나 형편없는 대우를 받았길래 자존심 무릅쓰고 ‘먹튀 환자’가 되려고 했을까? J선배는 그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와인을 들이켰다.


#에피소드 2
 안타까운 일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파견근무를 나간 다른 회사 선배가 대장암 진단을 받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치질인줄 알고 참고 지내다 며칠 휴가를 내고 한국에 들어가 검사를 받았는데 그만 암 판정을 받고 말았다.


그 일이 알려지면서 해외파견 나간 뒤 2~3년씩 건강검진을 하지 않고 버티던 주재원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불안함을 털어 버리려면 건강검진 한번 받아야 하는데 귀국 휴가를 낼 수도 없고, 고심 끝에 파리에서 내시경 검사를 감행(?)한 동료들이 몇몇 생겨났다.

 

프랑스에서 위, 대장 내시경을 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할까? 우리나라처럼 돈만 내면 이유도 묻지 않고 척척 해주는 검진은 찾아보기 힘들다. 조금이라도 아픈 곳이 있어야 그런 검사를 받기가 용이해진다.


2주 이상 악전고투 끝에 C선배가 내시경을 받고 무용담을 들려주었다. 과정은 이랬다. 처음에 뱃속이 불편하다며 ‘제네랄리스트’라고 부르는 일반의에게 갔다고 한다. 물론 예약은 최소 1주일 전이 기본이다. 한참 설명을 들은 일반의는 위와 대장을 전문적으로 보는 ‘스페샬리스트’에게 편지를 쓰고 C선배를 보냈다.


또 어렵게 랑데부(약속)를 잡아 스페샬리스트를 만났는데 그가 이것저것 꼬치꼬치 물어보고 드디어 내시경 할 수 있는 병원을 소개해 주었단다. 그 전문의는 내시경 장비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3단계를 거쳐야 겨우 내시경 한번 할 수 있는 것이 보통이다. C선배는 이 병원, 저 병원 옮겨다니며 상담과 진료, 검사에 매달린 시간이 너무 지루하고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에피소드 3
프랑스에도 보험이라는 것이 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우리와 비슷한 의료보험도 있고 민간보험도 꽤 발달해 있었다. 우리같은 파견 외국인이나 프랑스 부유층이 고급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민간보험에 가입한다고 들었다.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주재원 기준 4인 가족에 연간 5천유로 가까이 냈던 것 같다. 7백만원이 넘는 큰돈이다.


이런 민간 의료보험에는 진료과목별 한도가 정해져 있었다. 이를테면 내과 진료는 얼마까지 가능하고, 안과 치료비는 얼마까지 보장 등 이런 식이었다. 아들 시력이 나빠져 안과에 들렀더니 의사가 다른 가족들도 검사를 받으라고 권한다. 소견서를 잘 써 줄테니 안경 하나씩 맞추라는 얘기다. 오래 근무한 한국인 직원에게 물었더니 보험 한도만큼 안경을 맞추는게 관행이란다.


일단 시력교정술을 받아 눈부심 증상이 있는 내가 소견서를 받았다. 그걸 들고 안경점에 갔더니 근사한 레이밴 선글라스를 권하며 또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다음에 다른 가족들 것까지 전부 받아 오라고, 보험 한도 꽉 채워서 좋은 선글라스 하나씩 장만하시라고… .

 

이런 문제는 비단 안과만이 아니라고 한다. 불필요한 진료와, 비양심적인 의료 관계인들의 협잡으로 보험료가 줄줄 새나가고 있었다. 이듬해 부임하는 사람들은 쑥쑥 오른 보험료를 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프랑스는 어두운 면보다 밝은 면이 더 많다. 우리나라 의료계의 장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아끼는 프랑스를 팔았다. 세계 최고수준의 의사들, 빠르고 정확한 사회시스템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가 다소 진통이 있더라도 최상의 의료시스템을 잘 만들어 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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