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 '명예 or 멍에'
이종훈 경희대병원 경영기획팀장
2013.11.07 10:38 댓글쓰기

지난 주 목요일(10.31) ‘선택진료 제도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 가 열렸다.

 

박근혜정부 공약인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와 3대 비급여 제도개선 일환으로 마련됐고 국민행복의료기획단 주관, 보건경제정책학회 주최로 지난 10.10일 상급병실료 제도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보건행정학회 주최)에 이어 두 번째 마련된 토론회였다.


‘3대 비급여(상급병실료, 선택진료비, 간병료) 제도개선’ 과 관련된 두 번의 토론회를 직접 참관하면서 느껴진 나의 솔직한 심정은 "마치 남의 상가집에 오면서 대리인이 부조금도 없이 와서는 '3일장 할래요? 5일장 할래요?'" 라고 묻는 격이었다.


토론회엔 의료공급자 몫으로 패널로 참석한 사람이 3명이었는데 병협에서 두 명(대형병원과 중소병원 대표), 의협에서 한 명(보험이사) 이었다.


패널로 참석한 병협 보험이사는 "3대 비급여제도 개선의 절대적 이해당사자인 병협의 참여가 배제된 이번 정책토론회는 원천무효이며, 정책시행에 있어 재원조달 방안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정부 추진 개선안, 독약 아니면 사약"


다른 패널리스트였던 병협 정책위원장은 개선(안)을 두고 "하나는 서서히 죽어가는 독약(毒藥)이요, 다른 하나는 곧 바로 죽게 되는 사약(死藥)으로 어느 것을 선택해도 죽기는 매 한가지"라고 비유하면서 현재 병원계가 처한 불편하고 슬픈 상황을 전달하고자 했다.


앞서 열렸던 ‘상급병실료 관련 토론회’에 패널로 나선 병협 보험위원장은 당시 “오늘 검은 넥타이를 매고 나온 것은 병원계가 죽어가고 있음을 애도하는 의미입니다” 라며 참담한 심정으로 벼랑 끝으로 내 몰리는 의료공급자의 억울함을 토로한 바 있다.


상급병실료 도입과 선택진료 제도 시행취지와 경과를 설명하면 이렇다.


우선 상급병실의 경우 1978년 도입된 이후 1989년 병상수의 50% 이상을 기준병상으로 확보하도록 건강보험요양급여 기준에 명시했으며, 2011년 7월 이후 종합병원급 이상을 신규로 개설하거나 병상을 확대하는 경우 일반병상을 70%이상 확보토록 돼있다.


선택진료는 1963년 국립의료기관의 수입 보전을 위해 특별진료(특진)라는 용어로 제도가 시행됐고, 전국민의료보험이 실시된 1989년 10월 지정진료(지정)에 관한 규정이 제정돼 1990년부터 실시됐다.


이후 지난 2000년 7월 의약분업 시행과 더불어 선택진료(선택)시행에관한기준규칙 이라는 법령으로 제정된 이래로 지속적으로 수정, 보완돼 왔다.

 

선택진료제도가 변화돼 현재에 이르는 과정에서 '계층간 위화감 해소(특별진료->지정진료)' 와 '환자 선택권 강화(지정진료->선택진료)' 로 인해 명칭이 바뀐 것으로 기억한다.


국민행복의료기획단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이들 두 제도에 필요한 재정규모는 상급병실이 약 1 조원, 선택진료가 약 1.3 조원 이라고 한다. 그러나 병원계에서는 실질적인 손실액이 이 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군대용어로 'SSKK'라는게 있다. 풀어쓰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까라면 깐다’로 요약된다. 사실 그동안 의료공급자인 병원은 건강보험 보장성강화와 건강보험재정 안정화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우스개 군대용어처럼 일방적으로 희생을 감수해왔다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의료기관은 정부에서 제정한 법령과 규정을 약간의 투정으로 볼멘 소리를 하면서도 모든 정책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동참해 왔다.


선택진료 정책토론회 말미에 참석자들로부터 사전신청을 받아 진행된 질의 또는 코멘트 시간에서는 직접적 이해당사자이고 개선안이 시행될 경우 상당한 역할 축소가 우려되는 분야(영상의학/마취통증의학)의 거센 비판과 경고성 발언들이 쏟아졌다. 
 

그 가운데 K 병원의 고위 보직자가 직설적이면서도 적나라하게 표현한 병원경영의 현실을 귀담아 들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언급 내용을 잠깐 소개한다.

 

“우리 병원은 강북지역의 상급종합병원으로서 기능적 역할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경영이 더욱 악화돼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지면 노사갈등이 심화되고 이는 사회불안을 야기시킬 수도 있을 텐데 그 때 여기계신 분들이 책임질 수 있습니까? 의료공급기관의 구성원은 국민의료행복기획단에서 생각하는 국민이 아닙니까?”

 

"작금의 상황에서는 미래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 무용지물" 


몇 년 전 ‘병원의 품격’ 이라는 책을 존경하는 분과 함께 번역한 적이 있는데  저자인 가와부치 고이치는 이 책에서 품격있는 병원의 공통적인 특징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병원 설립주체나 병상규모에 관계 없이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환자중심적 사고.  둘째, 각종 제도나 규제에 좌우되는 의료계에서 끊임없이 앞을 내다 보는 힘, 즉 통찰력. 그리고 셋째, 병원 직원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조직문화가 그것이다.


이 중 두 번째 해당되는 정부 정책이나 제도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필요한데 작금의 보건의료정책을 보노라면 병원 종사자로서는 도저히 종잡을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심각한데 병원계의 맏형으로서 점잖은 체면에 악악댈 수도 없고, 곧 죽어도 죽겠다는 표현도 억제하는 모습을 어쩔 수 없는 속성으로 간파한 것인지 정부, 시민단체 등이 마치 유도의 업어치기, 메치기, 꺽기, 조르기까지 시도하는 양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공약(公約)에 매몰돼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일정을 너무 서두르게 되면 의료공급자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는 공약(恐約)이 되거나 의료시스템 마저 붕괴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제라도 정부가 현실을 외면한 보건의료정책으로 인해 보건의료정책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해 온 상급종합병원의 명예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멍에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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