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도 우리처럼, 우리도 그들처럼”
권은중 차장(한겨레신문 경제부)
2013.10.20 09:00 댓글쓰기

우리 한국인들은 개미를 닮았다. 진짜 개미처럼 열심히 일한다. 선진국 클럽인 세계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근로시간은 지겨울 정도로 부동의 1위를 차지해 왔다.


근로시간말고도 개미와 더 닮은 점이 있다. 바로 화학물질에 의존해서 산다는 점이다. 개미는 화학물질인 페르몬으로 대화를 한다. 적인지 동료인지 페르몬만 맡아보면 금세 안다. 적의 침략 등 응급상황에는 여왕개미가 개미굴 전체에 페르몬을 뿌려 대응하게 한다. 페르몬이 나오지 않는 개미는 개미가 아니다.


우리는 개미처럼 소폭(소주+맥주 섞은 술)에 취해 산다. 오후 6시 어스름에 동네 맥주집에 가보라. 아저씨 아주머니 젊은이 등 이미 많은 손님들이 500cc에 폭탄을 말아먹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밤 12시 홍대나 강남을 가보라. 스텝 꼬인 개미들이 택시를 잡고 있다. 이미 폭탄주는 우리의 일상이 됐다.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을 하고 화학물질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점 말고 내가 요즘 우리가 개미를 닮아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노처녀, 노총각이 늘고 있다는 점에서다.


개미는 알다시피 번식을 포기한 채 일만 한다. 물론 번식을 하는 수개미가 있지만 이들은 정말 번식용으로 수천마리가 여왕개미와 일생에 한 번의 수정을 꿈꾸며 꾸역꾸역 살아가다가 혼인 비행 이후 곧바로 죽어 버린다. 혼인 비행은 새들에게는 잔칫날이다. 일개미들은 수정이 끝난 뒤 밥만 축내는 수개미를 죽여버린다는 관찰도 있다. 번식은 보통 개미에게는 성가신 일이거나 사치인 셈이다. 

 

일개미는 심지어 수개미의 정자 없이도 여왕개미의 알에서 저절로 부화하는 처녀생식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다른 생명체와 달리 아버지의 유전자 n과 어머니의 유전자 n을 각각 받아 2n이 아닌 n의 존재로 일만 하다가 새끼도 낳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이다. 유전자만 본다면 반쪽짜리 삶이라고 하겠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일개미와 비슷한 남녀들이 나타나고 있다. ‘건어물녀’와 ‘초식남’처럼 스스로의 성징을 포기하는 젊은이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건어물녀는 퇴근 후 추리닝을 입고 동네 슈퍼에서 맥주를 사 집에서 오징어와 함께 먹는 연애포기 여성을 말한다. 초식남은 연애에 소극적이며 연애 대신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집에서 하는 일을 선호하는 남성을 말한다. 2n의 존재인 인간은 이미 n의 존재인 일개미를 추종하고 있다.


왜 젊은이들은 일개미로 변신하고 있을까? 저출산의 시대를 뜻하는 불임의 시대를 너머 결혼마저 하지 않는 불혼의 시대가 온 원인은 무엇일까?


고전경제학자들이 금지옥엽처럼 여기는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즉 수요 공급으로 이런 현실을 설명해보자. 먼저 공급이다. 그 많은 청춘남녀는 어디로 갔나?


남자의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나라의 주택 가격이 비싸 30대 초반 남자가 독립을 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서울에서 1억원으로는 전세를 구하기 쉽지 않다. 번듯한 아파트 전세는 2억원 강남에서 아파트는 3억원 이상이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결혼비용은 큰돈이 들어간다. 이 몫은 전통적으로 남자 부담이다.


그런데 남자가 이런 자금을 마련하려면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하거나 오랜 시간 돈을 모아야 한다. 남자의 결혼은 미뤄질 수밖에 없다. 체면이 중시되고 결혼이 두 사람의 결합이 아니라 집안의 결합으로 여기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선뜻 가난한 출발을 원하지는 않는다. 예전의 단칸방인 원룸에서 살림을 시작했다는 젊은이를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러나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급여소득자 1548만명 가운데 상위 28%의 소득이 3450만원이다.  한 푼도 안쓰고 10년을 모아야 3억4500만원이다. 현실과 이상의 간극이 너무나 크다.


여자는 수요와 공급이 팍 줄었다. 쓸 만한 남성이 많지 않은데다 자신들이 왜 능력없는 남자들과 결혼을 해야 하느냐는 반론이다. 실제 많은 여성은 남성들만큼이나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또 국가에서도 여성들이 취업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여성들도 이런 시대에 맞게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남자처럼 밤낮없이 일을 한다.


특히 여성들이 그 직장에서 중요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10년차 가 되는 시점이 30대 중반이기 때문에 일로서 승부를 걸려는 여성의 결혼은 쉽지 않다. 연하남 선호는 이런 골드미스(소득이 많은 나이든 전문 여성)의 등장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혼에 대한 공급과 수요가 동시에 줄어드는 큰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가 고용시장이 매우 경직됐기 때문이다. 짤리면 사실 할 게 없다는 뜻이다. 1997년 IMF 사태 이후 우리나라는 종신 고용이 사실상 사라졌다. 오죽하면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놈)라는 말까지 나올까? 게다가 노동인력의 절반은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이란 힘들게 똑같이 힘들게 일해도 월급은 절반 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젊은이들은 전문직 배우자를 선호하게 된다. 그러나 전문가가 되기는 쉽지 않다. 전문직 특징은 오랜 기간의 숙련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적어도 5년 이상 공부하거나 수련해야 한다.


남자가 군대를 갔다와 대학을 다니면 6~7년이 걸린다. 여기에 연수를 가면 1년이 늘어난다. 대학을 나오면 26~28살이 된다. 여기에서 만약에 법학이나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딴다고 생각해 보자. 의사와 박사가 돼도 자리를 잡으려면 한눈 팔지 않고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 전문가가 되면 벌써 40살이 가까워진다.


우리는 ‘전문가가 되자, 장인이 되자’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 사회의 많은 업무가 고도로 분화되고 경쟁이 치열하면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는 것은 맞다.  문제는 담당 업무가 현기증 나게 변한다는 점이다.


20여 년전만 해도 기자들은 기사를 원고지에 썼다. 하지만 1990년대 컴퓨터 기사 작성이 시작됐고 PC통신이 나오면서 전화 연결을 해 송고를 했고 2000년이 되면서 인터넷으로 바로 송고했다. 심지어 이제는 휴대폰을 이용한 송고도 가능하다. 기술을 누리는 사람이 고개를 갸웃할 정도로 기술의 진보가 빠른데 이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부담감을 느낄까? 전문가라는 사람도 정상에 도달한다고 해도 시대의 흐름은 그를 정상에 놔두지를 않는다. 


장인이 됐다고 해도 다른 장인들은 부지기수다. 아무리 수타 짜장면과 수타 피자를 잘 만들어도 동네에 우후죽순처럼 음식점이 들어선다. 게다가 내가 아무리 잘 만들어도 대기업 계열의 거대자본이 밀고 들어오면 문을 닫는 게 현실이다.


고전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시장 개입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냥 놔두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결혼만을 놓고 보면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약간 시대착오다. “어명이니 결혼하시오. 노총각 노처녀에게 죄를 묻겠소.”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결혼 시장의 뒷면에는 우리 사회의 고용과 주택의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 정부는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신혼부부들이 결혼해서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한다. 시세차익을 만질 수 있는 보금자리 아파트나 강남 재건축보다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는 임대주택이 우리 사회에서는 더 시급하다.


좋은 일자리는 젊은이들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50대들도 질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늙어서도 치킨집이나 공공 근로말고도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자존감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사회가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 노인인구의 자살율은 일반인의 10배 이상이다. 그들의 자살 원인은 ‘경제적 원인’이 아니라 저녁밥을 걱정해야 하는 ‘절대 빈곤’이 탓이 크다.


늙어서도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젊은 남녀들이 상대방의 직업과 아버지의 재산을 주판알 튕기는 슬픈 거래가 생기지 않는다. 50이 넘어도 당당하게 일할 수 있는 자리가 많은데 왜 다른 사람의 재산덕을 보려고 잔머리를 굴리겠는가? 왜 직장에서 해고됐다고 자신의 삶은 물론 가족들의 삶까지 포기하는 동반자살을 하려 하겠는가?


개미는 6000만년전에 지구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인간의 역사가 고작 300만년이니까 개미는 인간보다 훨씬 긴 사회화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개미는 왜 무성생식이라는 극단을 선택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경쟁에 떠밀려 살아남기 위해 어떤 선택과 집중을 한 결과일 것이다. 번식은 내가 할테니 너희 일개미들은 돈이나 벌어라. 남자? 그까짓 거 수정 없이도 나는 일개미를 낳으련다. 이런 식의 결단을 내린 종들만 살아남았을 것이다. 


인간은 유인원으로 나무에서 내려와 대지를 디딘 후 300만년만에 개미와 같은 선택지를 받아 들었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미래 사회에서 아이를 공장에서 키우는 양육시스템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면서 그런 사회를 유토피아라고 말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젖과 꿀이 흐른다는 현대 사회에서 결혼이 그리고 남녀 관계가 어쩌다가 생존에 번거로운 짐이 됐을까? 안 나오는 페르몬 대신 참기름이라도 바르고 땅바닥에 엎드려 개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열심히 반쪽으로 사는 너희들은 그래서 행복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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