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원을 살려야 합니다'
박노준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
2013.09.15 14:34 댓글쓰기

 

나는 서울 한 곳(천호동)에서만 26년간 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동네의원은 말마따나 가게로 따진다면 구멍가게라고 할까. 그래도 반가운 일이라면, 옛 분만하던 시절 분만한 아이가 성장해 엄마와 같이 "너를 받아주신 선생님이시다"라고 인사할 때 가장 보람을 느꼈었다. 하지만 출산율 저하로 분만실 운영이 어려워 분만을 포기한지가 10년이 넘고 보니 이제는 그 보람마저도 사라져 산과의사의 자부심도 희미해지고 다 옛날의 추억이 돼 버렸다.

 

개업 후 10년은 월세 꼬박 내 가면서 열심히 분만한 덕에 그럭저럭 살아갈 수가 있었고 90년대 말 IMF가 터지면서 내 의원이 있던 빌딩이 경매처분 돼 전세금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 할 수 없이 빚을 내어 산 상가건물로 지금까지 의원을 근근히 유지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때 상가를 산 탓에 월세가 안나가는 것이다. 그 때 사지 않았다면 벌써 폐업을 했어야 했다. 내 주위에 있었던 산부인과 병의원들이 하나 둘 없어진 것도 한 몫 했을 것이고 나 역시도 몇 년 내에 문을 닫아야 할 처지가 됐을 것이다.


폐원율 ↑ 개원율 ↓ 쇠락하는 동네의원


최근 의원급 요양급여 점유율을 보니 2001년도 33%, 2009년 23%, 2013년 6월 현재 21%로 12년만에 무려 12%가 감소했고 금년 안으로 20% 이하로 감소 될 것이 쉽게 예측된다. 병원급은 32%에서 42%로 증가했고 약국은 23%로 계속 유지중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기관 개-폐업 현황(2009~2012년) 자료를 보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위기 상황이 여실히 드러난다.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연도별로 폐업한 의원급 의료기관은 2009년 1,487개로에서 2010년 1,559개소, 2011년 1662개소 그리고 2012년 1,625개소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신규 개설한 의원 수는 2009년 1.986개소, 2010년 2,001개소, 2011년 2,030개소 그리고 2012년 1,821개소로 파악됐다. 신규 의원 개설은 줄어든 반면 폐업한 기관수는 증가한 것이다.


또 2003년 1,918곳이었던 전국 산부인과 개원수는 2011년 1,520여곳으로 8년간 400여곳이 감소했다. 산부인과 전문의 배출 수 역시 전보다 반이하로 줄었다. 이는 머지않아 동네 산부인과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고 향후 출산을 담당할 남자 산부인과 전문의가 거의 없으니 아마도 외국에서 산부인과의를 수입해야 할 것이다.


이는 동네의원이 침체되면서 점점 쇠락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일각에서는 동네의원, 일차의료의 붕괴가 시작됐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동네의원이 붕괴되면 어떤일이 발생할까? 불필요한 건강보험 재정낭비, 국민의료비 부담 증가로 인해 의료재원이 낭비되고 국민들의 의료 접근성이 떨어져 국민건강이 위협받게된다.


이를 지적하듯 최근 한국개발연구원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공동개최한 컨퍼런스에서 우리나라 병원 중심의 의료서비스 체제에 대해 경고하는 강연이 발표됐다. 일차의료 중심으로의 전환 및 활성화를 위해 지역사회 의료 시스템을 설계하고 일차의료의 지역적 구조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재정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의료공급 및 의료소비체제의 구조화를 통한 효과적인 의료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시급히 산부인과를 살릴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상급병원, 보건소, 약국과 경쟁 중인 동네의원


우리나라는 의료전달체계는 있지만 이름뿐으로, 상급병원으로의 환자쏠림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고 의원은 외래환자 위주, 병원은 입원환자 위주가 돼야 하는데 병원들도 입원은 물론 외래환자까지 차지하는 양상이니 시설이 미약한 동네의원들이 밀릴수 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페널티 제도 등으로 회송 시스템을 강화한다던지, 외래 본인부담 차등제를 두는 방법으로 가벼운 질환의 환자들이 상급병원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또 보건소는 본래 기능인 질병예방관리 등에 중점을 두고 운영돼야 하는데 보건소가 진료의 벽을 허물고, 무료진료, 진료비 경감마저 이행하고 있으니 환자들은 보건소로 갈 수 밖에 없고 보건소가 지자체 소속기관이다보니 각 시군구청들이 보건소 진료 활성화를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보건소 진료기능 축소와 관련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한다.


의약분업이 실시된지 13년이 됐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를 캐치 프레이즈로 의약을 완전히 분리시켜 확실한 분업이 돼야 하는데 아픈 환자가 약국에 가면 의사처방 없이도 얼마든지 일반약을 사먹고 있으니 환자들은 귀찮아서라도 동네의원을 찾지 않는다. 게다가 임의조제, 불법대체조제까지 하고 있으니 의약분업 후 개원의들은 힘이 들 수 밖에 없다. 제대로 된 의약분업을 해야한다.


동네의원을 가야할 환자들이 상급병원, 보건소, 약국 등으로 감으로써 의원의 자멸과 일차의료의 붕괴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정부는 현실을 방관할 것만이 아니라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의료공급 및 의료소비체제의 효과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원가의 70%인 수가를 100%로로 상향, 수가 현실화를 실천하고 의원을 위한 의원관리료, 상담료 등 새로운 수가를 신설해야한다. 끝으로 상급병원만 보장성강화를 할 것이 아니라 의원급도 포함해야 일차의료의 붕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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