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인력 개편 논쟁에 부쳐
곽지연 간호조무사(서울 H치과)
2013.08.25 20:00 댓글쓰기

내가 잘 아는 간호조무사가 있다. 그는 4년제 대학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서 운동치료를 전공했다. 그리고 병원에 취업을 했다.

 

그런데 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에서 전공한 운동치료는 의료 영역에서는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불법의료행위가 된다. 그래서 그는 1년간 간호학원을 다니며 공부해 간호조무사 자격을 취득했다.

 

지금 그는 그 병원의 운동치료실에서 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가 말하길, “간호인력 개편으로 사다리 과정이 만들어지면 1급 실무간호인력 자격(면허)도 취득하고 나중에는 간호사 면허도 취득하고 싶다.”고 한다.

 

사다리과정이 없는 지금 그 후배는 그런 생각을 포기하고 산다. 대학원까지 마친 그가 간호사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국영수 공부를 죽으라고 해서 다시 대학입학시험을 치러야 하고, 합격을 하더라도 4년 동안 생업을 포기하고 공부해야 하지만,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아 키우는 그로서는 도저히 가능한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원까지 마친 그가 간호사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다시 대학에 입학해야 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나는 사회적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의 경우 굳이 간호대학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별도의 내실있는 교육과정을 거쳐 간호사 면허를 취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다리과정은 바로 이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간호사 면허는 ‘학위’에 관한 사항이 아니라 기술자격에 관한 사항이다. 반면 간호학학사-간호학석사-간호학박사과정은 학위과정이다. 학위과정과 기술자격에 관한 사항이 반드시 일치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강한 기술자격일수록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이론교육이 병행되어야 함은 틀림없지만, 그것이 꼭 학위과정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만일 자격과 학위과정이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면, 공인회계사는 4년제 대학 회계학과를 졸업해야 하고, 판사, 검사, 변호사는 4년제 대학 법대를 졸업해야 하며, 행정 공무원은 4년제 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해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되어야 옳다. 다른 전문 직업들도 다 마찬가지다.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미국의 경우 간호사 양성과정이 4년제 대학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2년제도 있고, 3년제도 있으며, 4년제도 있다. 주마다 다양하다. 다만, 2년제 간호사의 경우 학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학위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학위과정과 기술자격과정이 100%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간호대학을 갓 졸업하고, 간호사 면허를 최근에 취득한 A와 10년 전에 간호조무사 자격을 취득하고, 간호사가 부족한 중소도시에 있는 소규모 중소병원의 병동에서 3교대 근무를 하며 간호사를 대신하는 업무를 수행한 B가 있다. 그러면 A와 B 중 누가 환자 상태를 더 잘 파악하고, 환자에 대한 간호를 누가 더 잘할 수 있을까.

 

당연히 B 아니겠는가. A는 간호대학에 다닐 때 실습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실제 임상간호 경험은 사실상 부재하다. A의 경우 대학병원에 입사하면 2~3년 정도의 트레이닝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간호사로서 본연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고 한다.

 

반면 B는 대학입시공부를 해서 간호대학에 입학하지 않는 한, 영원히 간호조무사로 살아야 한다. 간호업무를 수행할 능력도 있고, 간호에 대해 많은 지식을 습득했지만, 국영수 중심의 입시공부를 해온 고교 입시생과 경쟁해 간호대학에 입학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학벌주의 우리 사회에서 현실에서는 B가 간호사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고교 입시생들에게 간호대학에 진학해서 간호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것처럼 간호조무사에게는 그들에게 맞는 간호사가 될 수 있는 사다리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믿는다. 4년제 간호대학을 졸업하지 않더라도 별도의 교육만 내실 있게 받는다면 간호사 면허를 취득해 간호사로서 자신의 업무를 충분히 잘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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