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美食) 한끼 하실래요?
권은중 차장(한겨레신문 경제부)
2013.07.21 23:00 댓글쓰기

“당신이 먹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다오.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주겠다.”


 근대적 개념의 프랑스 요리를 만든 프랑스 요리사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이 한 말이다. 이 사람은 요리사가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군을 피해 외국으로 도피할 정도의 귀족이었다. 직업은 판사 출신 변호사였고 <미식예찬>이라는 책을 써서 프랑스 대혁명 이후 왕족과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미식을 시민들에게 알려준 사람이다. 


 <미식 예찬>을 보면 음식에 대한 사바랭의 생각이 자세히 나온다. “생명이 없으면 우주도 없으며, 살아있는 모든 것은 양분을 섭취한다”, “새로운 요리의 발견은 새로운 별을 발견하는 것보다 인류를 더 행복하게 한다.” 중국사람 뺨치는 허풍이 밉지 않다. 미식에 대한 신념같은 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왜 프랑스에서 미식이란 개념이 태어났을까?


파스타를 연구하다가 의문의 실타래가 풀렸다. 국수는 중앙아시아가 원산지인 밀이 한나라 이후 중국으로 왔고 당나라때 중국의 상업문화 결합하면서 생겨났다. 메이드 인 차이나인 국수는 이제 실크로드나 바닷길을 통해서 중앙아시아나 서남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간다. 1000년쯤 중세 암흑기로 불리는 유럽에서 당시 국수를 만들어 팔 수 있는 생산력을 가진 나라는 이탈리아밖에 없었다. 당시 당나라 수도 장안이 지금의 뉴욕이라면 런던은 쥐가 들끓는 적도 인근의 가난한 섬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당시 이탈리아는 도시국가였고 각 도시마다 상업조합인 길드가 있었다. 폐쇄성이 특징인 길드에서는 다른 도시의 길드를 의식해 경쟁적으로 독특한 디자인의 국수를 만들었고 이게 오늘날 다양한 모양의 파스타로 이어졌다. 국수는 이처럼 길드를 통한 상업의 발전과 밀접했다. 상업이 발전하는 곳에는 상품과 돈, 이 둘을 연계하는 계약이 있기 마련이다.


계약은 중국과 거리가 멀었다. 이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과의 결정적 차이다. 중국은 강력한 중앙집권의 국가였고 이탈리아는 도시별로 찢어진 도시국가였다. 비슷하게 영국 독일도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중국과 달리 왕권을 뒷받침할 강력한 산업생산력이 없었던 탓이다. 이 때문에 지방 귀족들은 왕과 계약을 맺기도 했다. 잘 알려진 것이 1215년 영국의 대헌장이다. 대헌장을 민주주의 출발점이라고 하지만 귀족들이 만만한 왕을 견제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서 귀족들이 왕과 계약을 맺자고 하면 아마 9족을 멸했을 것이다.


왕과 계약을 할 정도로 능수능란한 유럽의 계약문화는 산업 발전을 촉진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반면 계약보다는 왕의 뜻이 중요한 중국은 왕이 성군이냐 폭군이냐에 따라 산업이 춤을 췄다. 결국 중국은 유럽에 추월당하고 만다.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의 국가들은 대항해 시대 이후 세계 대부분의 나라를 식민지로 거느리고 수탈을 벌였다. 이렇게 쌓인 부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됐다. 그런데 영국은 피쉬 앤 칩스(생선튀김과 감자튀김)라는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해결할 때 프랑스에서는 미식이 태어났다. 

 

두 나라의 차이 역시 왕권과 관계가 있다. 영국의 왕들이 스스로 근검절약하며 영국과 결혼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청교도적이었다면 프랑스 왕은 짐은 곧 태양이라고 말할 정도로 왕권이 셌다. 프랑스 미식은 이런 문화 차이에서 싹텄다. 물론 영국도 미식이 있었다. 그들의 미식은 그냥 마셔도 되는 맛난 홍차에 설탕을 듬뿍 넣어서 먹는 거였다. 당시 설탕은 같은 무게의 금과 같은 값이었다.


본질적인 차이도 있다. 요리는 그 지역의 역사뿐 아니라 기후와 식생을 반영한다. 머리띠 두르고 ‘미식하자’라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프랑스가 미식에 성공한 것은 유럽에서 가장 농업과 어업이 발달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와인과 치즈는 이미 프랑스의 저력이었다. 반면 영국은 포도가 잘 자라지 않는 습한 땅이다.


 프랑스가 동양과의 독점 무역을 해왔던 이탈리아와 국경을 맞댄 것도 영향이 컸다. 게다가 이탈리아가 도시국가로 머물 때 프랑스는 강력한 왕국을 이루었다. 왕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프랑스는 이탈리아의 미식을 빠르게 흡수했고 원래 맛있는 식재료가 많은 기름진 물산이 적절하게 결합한 것이다.


이는 북방과 남방이 정치·경제적으로 통합되면서 다양한 요리가 스스로 넘쳐났던 중국의 미식사와는 차이가 있다. 또 동양과 서양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독자적인 미식의 역사를 써온 터키와도 다르다. 중국, 터키는 프랑스와 함께 세계 3대 미식국이다.


프랑스의 중앙집권적인 미식 전통은 파스타를 배제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당시 포크조차 대중화되지 않아 파스타는 손으로 먹는 서민음식이었다. 파스타가 발달한 남부 이탈리아에서조차 파스타를 귀족들은 먹지 않았다. 이탈리아 요리를 벤치마킹한 프랑스 요리에 파스타가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만약 백성들 음식에서 출발해 프랑스의 미식이 싹텄다면 파스타는 이탈리아에서처럼 그 나라 요리의 한 축이었을 것이다.


 프랑스는 후발주자였지만 왕실의 후원으로 빠르게 미식 대국으로 떠오른다. 왕과 귀족이 요리를 후원하면서 독특한 레시피들이 개발된다. 프랑스 요리의 특징은 소스인데 소스라는 것은 각종 진귀한 재료를 융합시키고 새로운 맛을 내는 일종의 촉매제다. 프랑스 요리는 전통보다는 창조인 셈이다. 소스를 만들기 위해 요리사는 중세의 연금술사처럼 며칠을 불 옆을 떠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프랑스 요리는 지나치게 발달해 배를 굶주리는 서민들의 분노를 촉발했다. 결국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고 사치를 일삼던 왕과 귀족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왕과 귀족들의 요리사들은 새로운 일자리로 시장에서 음식점을 차려야 했다. 최초의 음식점이 내놓은 메뉴는 양의 다리를 화이트소스(밀가루를 버터에 볶다가 우유와 향신료를 넣고 끓인 소스)에 끓인 스프였다고 한다. 시민들은 이 음식을 맛보고 회복하다는 레스토레(restaurer)라는 단어를 붙여 식당을 레스토랑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레스토레’ 음식은 무엇일까? 삼계탕이나 육개장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싶다. 일본 영화 <달팽이 식당>을 보면 주인공인 요리사는 남편을 잃고 매일 상복을 입는 이웃여자를 위해 원기회복 음식을 해준다. 메인 요리 가운데 하나가 삼계탕이였다. 이웃 과부는 삼계탕의 국물까지 남김없이 먹고 다음날부터 상복을 벗고 파스텔톤 원피스를 입고 꽂을 들고 다닌다. 삼계탕의 파워를 어떤 학술적 분석이나 보도자료 따위보다 위트 있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리는 프랑스 요리처럼 소스가 발달해 있지 않다. 담백하게 재료 본연의 맛을 먹어왔다. 이런 풍조는 민간보다 넉넉한 왕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외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요리에 인삼, 과일, 약초, 나무껍질 등 다양한 한국 전통 재료가 들어간다는 점이다. 갈비나 삼계탕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것도 담백하면서도 독특한 요리기법 때문일 게다. 우리나라는 500년을 이어온 왕실이 있었고 쇠고기와 생선을 즐겨먹었기 때문에 미식의 저력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미식은 커녕 밥 먹는 시간도 귀찮아 할 정도로 각박하다. 삼각김밥이나 컵라면으로 요기를 때운다. 여성들은 아예 다이어트를 한다고 밥을 건너 뛴다. 이런 영양부족은 결핵같은 질병의 원인이 되며 돌연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 대중매체 덕분에 맛집순례 열풍이 불면서 맛집이라고 보도된 곳은 문전성시지만 질 좋은 서비스를 기대하긴 어렵다. 느긋하게 함께 온 사람들과 밀린 이야기를 하기에 적합한 맛집은 참 드물다. 심지어 돈을 주면 맛집이라고 소개하는 맛집들이 많아 실망하기일쑤다.


캠핑음식을 보면 절망스럽다. 도시의 찌들었던 일상에서 탈출해 자연과 함께 하며 주중에 힘든 피로를 떨치는 힐링의 한 방편이 캠핑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캠핑을 가면 삼겹살을 먹는다. 삼겹살은 양반이다. 두가지 라면을 섞은 짜파구리를 먹는다. 방송은 이 부실한 음식을 힐링음식으로 포장해준다. 거기에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폭을 투하한다. 힐링이 아니라 ‘헬링(지옥+ing)’이다. 


캠핑에 가서 라면을 먹는 것은 맛은 있을지 몰라도 힐링 휴식과는 거리가 있다. 컵라면을 먹다가 회식한다고 가서 삼겹살을 먹는 도시의 먹거리를 캠핑에 가서도 그대로 먹는 것은 아름다운 대자연속에서도 콘크리트에 누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도시인의 편협함과 비슷하다.


사람은 부모가 생명을 주지만 그 생명을 이어가는 것은 음식이다. 미식의 기본은 라면과 삼겹살로 끼니는 떼우다가 한달에 한번 스테이크나 랍스터를 먹는 것이 아니라 매 한끼 한끼를 알차게 먹는 것이다. 먹는 것을 공양이라고 말하는 사찰음식을 우리나라 제일의 미식으로 꼽는 나는 사바랭의 말을 이렇게 바꿔보고 싶다.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을 만든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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