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이틀 밤
조정 차장(SBS 보도국)
2013.04.16 18:00 댓글쓰기

 
실로 기다리던 날이었다. 특파원 임무를 마치고 복귀한 지 3년이 지나기 전에 다시 파리에 출장가게 된 것은 행운. 설레는 마음을 안고 비엔나와 베를린을 거쳐 파리에 도달했다. 파리 리용역에 가까워질수록 TGV는 속도를 줄였다.


어둠 속을 헤집고 차창을 때리는 눈송이. 기차에 탄 파리지앵 말로는 20, 30년 만에 처음 보는 큰 눈이란다. 내가 살았던 4년 동안에도 보지 못했던 폭설이었다. 변변한 제설장비 하나 없는 파리는 발이 묶인 영어의 도시가 되고 말았다. 런던을 잇는 유로스타는 멈춰 섰고, 도심은 스노타이어 없이 미끌미끌 거북이 운행을 하는 차들로 아수라장이었다.


원래 파리에는 눈이 잘 안 온다. 2006년과 2007년에는 눈 구경을 거의 못했다. 그런데 기후변화의 결과일까, 이듬해부터 겨울이면 몇 차례씩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샤를드골 공항과 기차역이 마비되는 일이 한 두 번씩 반복됐다. 그래도 프랑스인들은 준비하지 않았다. 

 

바로 전에 거쳐 온 베를린에서는 훨씬 강하게 눈이 내렸지만 걷는데 조차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언제, 누가 깔았는지, 차도 뿐 아니라 모든 통행로에 검은 돌가루가 깔려있어 미끄러질 일이 없었다.


눈길을 더듬어 출장팀이 겨우 도달한 곳은 파리 불로뉴의 명문 호텔로 이름난 R호텔. 짐을 풀고 샤워를 하려니 온수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별 다섯 개 특급호텔이다. 방을 바꾸는 것도 귀찮아 졸졸 흐르는 미지근한 물에 몸을 맡겼다.


파리, 아니 유럽에서 최고로 높이 치는 한식당 ‘우정’의 김사장은 오랜만에 보는 내게 하소연부터 늘어 놓는다. 정부가 갖가지 명목으로 세금을 뜯어가 살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알려진 대로 프랑스에는 부자세가 있어서 돈 좀 번다는 사람들은 맥을 못 춘다. 버는 게 많은 만큼 세율은 그 이상으로 뛰어오른다. 그래도 세수가 모자랐는지 요즘 파리지앵의 화두는 주차단속과 견인이었다.


골목 좁은 파리에서는 길가에 ‘페이양(PAYANT)’이라고 표시된 정해진 구역에 차를 댄 뒤 자율적으로 본인의 예상 주차시간 만큼 티켓을 끊어 운전석 앞에 놓으면 그만이다. 주차비가 만만치 않으니 점심 먹으러 갈 때 한 시간 딱 끊어놓고 5분, 10분쯤 늦게 오는 게 보통이었다. 그 정도는 단속감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란다. 단속요원들이 지키고 있다가 주차티켓 시간이 지나기 무섭게 차를 끌어간다고 한다. 최대 주차시간이 두 시간이니 오랜 시간 볼 일이 있는 사람은 아예 차를 못 쓸 지경이라는 얘기다.

 

업무를 마치고 찾은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불편한 일이 이어졌다. 언제부터인지 자국인들의 일자리 창출을 내세워 5인 이상 단체가 가이드 설명을 들으려면 반드시 프랑스인 학예사를 대동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었다. 말이 학예사지 아무 하는 일 없이 이어폰만 나눠주고 한국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는 수십 유로를 챙겼다. 입장권 말고도 가욋돈을 뜯기는 기분이 들었다.


귀국하는 날 공항에서까지 프랑스의 위대한 서비스 부실은 계속됐다. 내 비행기 티켓 날짜를 변경해 발생한 차액을 신용카드로 결제하겠다고 했더니 창구의 여직원이 반대편으로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신용카드 승인용 단말기에 전파가 잘 안잡혀서 잘 터지는 곳으로 이동해야 카드 결제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고의 음식과 볼거리, 와인 향과 낭만이 넘치는 제2의 고향 프랑스. 왜 이 지경이 되고 있을까? 잠시나마 그들 속에서 살았던, 파리를 사랑했던 이방인으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프랑스인들 몸에 밴 지나친 사회주의 근성과 시스템이 문제였다. 땀 흘린 만큼 반대급부를 정당하게 누릴 수 없고, 벌어들인 만큼 부를 쌓을 수 없다면 그 사회의 동력은 상실되고 만다. 지금 프랑스가 그런 위기에 처해 있다. 민원 해결을 재촉하는 시민이 눈앞에 있는데도 근무시간 끝났다며 등 돌리는 공무원, 벌어봐야 세금만 더 낸다며 사업 확장을 주저하는 경영자들, 바닥으로부터 시스템을 고치려하지 않고 손쉽게 돈만 거둬들이는 정부는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 가고 있었다.


바쁜 우리나라에서 살며 지나친 성과주의와 경쟁으로 인한 비인간화, 사회적 스트레스를 걱정하고 비판했던 내 사고의 뿌리가 잠시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구성원들에게 돈이든 무엇이로든 동기부여를 할 수 없는 사회,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자극’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프랑스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1789년부터 5년간 국가와 사회를 일깨웠던 프랑스 혁명처럼 내가 사랑하는 프랑스에 새 바람이 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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