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권력의 핵(核) ‘두 도시’ 이야기
권은중 차장(한겨레신문)
2013.01.18 11:57 댓글쓰기

정부 부처 대부분이 2014년까지 세종특별자치시로 이전한다. 이미 총리실이 9월 이전을 했고 12월 기획재정부 국토해양부 농림수산식품부 공정거래위원회가 둥지를 옮겼다. 기획재정부를 출입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세종시에 거주지를 마련해야 했다.


지난 9월30일 집계약을 위해 처음 찾은 세종시는 중동의 나라 두바이를 연상하기 충분했다. 아무 건물도 없는 시뻘건 황토벌 위에 50~60개의 크레인만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예전 2005년께 건설교통부(국토해양부 전신)를 출입했을 때 세종시가 어디에 생기는 지 한번 본 뒤로  7년만에 오는 것이었는데 그때와 달리 황량한 풍경이었다.


그런 황량함은 잊어버리고 집을 계약하고 11월 이사를 하고 짐을 풀었다. 그리고 주말마다 세종시에 내려가 짐을 정리하면서 주변을 살펴봤더니 낯설고 물설은 세종시가 서울과 참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선 세종시 정부종합청사는 북쪽으로 원사봉이라는 150m 높이의 야트막한 산과 남쪽으로는 금강을 끼고 있다. 서울의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와 청와대가 북악산을 뒤로하고 한강을 남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비슷하다. 


비슷한 점은 한강처럼 동에서 서로 흐르며 세종시를 관통하는 금강만 놓고 보면 더 두드러진다. 세종시 학나래교라는 다리 밑에는 작은 섬이 있는데 그곳은 서울로 치면 여의도와 비슷한 위치다. 물론 섬의 크기는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작은 모래언덕 정도다. 그 위 금남교 밑에는 예전 잠실처럼 작은 강이 퇴적층에 가로막혀 호수를 이루는 모습도 연출한다. 지금은 겨울 갈수기이어서 물이 얕아 잘 보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세종시의 금강은 북쪽에서 흘러온 미호천과 세종시에서 합수가 되는데 그 지명이 합강리다. 서울 근교의 두물머리인 양수리를 떠올리게 한다. 양수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곳이다.


또 금강을 건너 남쪽을 바라보면 약간의 평지에 이어 야트막한 산들이 둘러싸여 있다. 이는 서울 한강 이남의 관악산, 청계산, 대모산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의 면적은 서울의 강남과 비교하면 매우 좁다. 또 이미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기 때문에 강남 개발붐같은 것은 애당초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세종시를 선택했을 때 조선의 명당이라는 서울과 비슷한 지리를 일부러 골랐는지는 모르겠다. 조선의 수도 한양은 고려말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와 고르고 고른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왕조는 무능했지만 망하지 않고 500년이 갔다는 말도 있다. 풍수지리를 전혀 모르는 눈으로도 서울과 쏙 빼 닮은 세종시는 과연 명당일까?


세종시는 산과 강의 배치인 풍수지리만으로 서울과 닮은 것이 아니다. 도시의 속살도 서울을 쏙 빼닮았다. 

  
세종시는 현재 한솔동 첫마을만이 입주한 상태다. 나머지는 건설중이다. 첫마을에는 초등학교가 두 개, 중학교가 한 개, 고등학교가 한 개 있다. 세종시 북쪽 어진동의 성남고등학교까지 합치면 세종시에 건설중인 행정도시 인근의 학교는 모두 5개다. 서울의 웬만한 동네 한 곳에 있는 학교 수에 불과한 수준이다.


학교 숫자는 이처럼 적지만 학원은 의외로 많다. 세종시에서 아침 신문을 받아보면 학원 선전지가 수북하다. 치킨집이나 피자집보다도 더 많다. 웬 학원이 그렇게 많은지 상가가 아닌 일반 아파트의 베란다에도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프래 카드가 즐비하다. 중국집이 그 넓은 동네에 첫마을짜장 세종짜장 단 2개밖에 없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서울에서 그 흔한 백반집은 아예 없다(한식부페, 콩나물국밥집이 고작이다). 학원이 더 많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다.


뜨거운 교육열도 ‘학원중심도시’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지역사회를 녹일 기세다. 세종시 첫마을은 상업지구와 거주지구 두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상업지구에는 찬샘초등학교가 있고 거주지구에는 한솔초등학교가 있다.


부모들은 평수가 넓은 아파트가 많은 거주지구를 선호해 대부분 한솔초등학교가 있는 아파트를 선택한다. 하지만 수요는 가격 상승을 부르는 법.


한솔초등학교를 끼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다른 아파트 단지보다 전세가가 비싸다. 아이들이 길을 건너지 않고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한솔초등학교는 이미 9월 각 학년마다 정원이 모두 꽉 찼다.


반면 상업지구에 있는 찬샘초등학교는 학생수를 채우지 못했다. 교육청은 5단지로 이사온 학부모들에게 참샘초등학교로 갈 것을 권했지만 학부모들은 반대했다. 이유는 길을 건너거나 자동차로 통학을 시켜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른 걸음으로 걸으면 10분 안쪽이다. 


결국 한솔초등학교는 교장실까지 교실로 내주면서 학생수를 늘렸다. 당초 1학년당 20명 6반이 정원이었지만 30명 8반으로 반을 늘렸다. 그래도 학생수는 포화상태다. 아파트 단지 2곳 5000명을 기준으로 학교를 설계한 세종시 시행사인 주택토지공사의 셈법이 요즘 부모들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한 셈이다.


부족한 학교를 비웃듯이 우후죽순처럼 학원이 생기고 있다. 허술한 공교육과 높은 교육열 그리고 밀집한 학원은 서울의 모습, 그것도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강남이나 양천의 축소판이라고 하겠다. 

세종시는 지금 전체 공정의 20%도 다 진행되지 않았다. 덕분에 도시는 온통 황토벌이고 흙먼지가 날린다. 그래서 세종시에서 제일 필요한 것은 엉망인 길을 안심하고 다닐 수 있게 하는 장화라는 우스개소리도 있다.


세종시에서 살아보니 정작 필요한 것은 새로운 책을 볼 수 있는 도서관과 서점, 그리고 사람들과 따뜻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전통있는 음식점과 커피숍, 그리고 질좋고 다양한 생필품이나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는 시장이다. 이런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보다도 더 먼저 세종시를 뒤덮으려는 학원들을 보면 씁쓸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종시가 행정중심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서울이나 다른 대도시들과는 다른 우리나라 도시의 새로운 미래를 과연 그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관련기사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