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 가로막는 복지부
변재환 전 여의도연구소장
2012.07.15 22:59 댓글쓰기

보건복지부가 더 배워서 국민에게 더 잘 봉사하겠다는 것을 가로막고 나섰다. 최근에 입법예고했던 '간호조무사 및 의료유사업자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 중 간호조무사 자격시험 응시자격 요건 개정이 그것이다.

 

이 개정안의 내용은 법 논리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경제학적 원칙과도 어긋나고, 상식과 현실과도 괴리돼 있다.

 

규칙 개정을 입법예고하면서 제공한 보도자료에 명시했듯이, 이번 개정안은 최근 경기 평택 소재의 한 전문대학에서 현행 '법령상 미비점을 악용하여' 간호조무전공을 신설하고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개정안 내용의 핵심은 응시자격을 '전문계 고등학교 간호 관련 학과를 졸업한 자 또는 이와 같은 수준 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 인정하는 자'에게 부여하던 것을 뒷부분을 삭제하고 '특성화 고등학교의 간호 관련 학과 졸업자'에 한정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간호 관련 학력 수준이 고등학교를 초과하는 사람에게는 간호조무사 자격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전문대학에서 2년제 간호조무 전공학과를 졸업하더라도 간호조무사 자격시험 응시자격을 주지 않겠으니 이미 신설한 간호조무과를 폐쇄하라는 통보나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은 개정안을 내면서 복지부는 자격증 남발 및 사회적 자원 낭비의 방지와, 학력 과잉 우려, 교육현장의 혼란 최소화와 학생들의 피해 방지 등을 개정 이유로 삼았다. 이들 개정 이유 모두가 타당성이 없다.

 

고등학교 졸업자에게 부여하던 자격을 전문대학 이수자에게 부여하는 것을 자격증 남발이라고 할 수 없다. 자격 요건을 추가로 획득한 사람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어떻게 남발인가. 사회적 자원 낭비론도 말이 안 된다.

 

간호조무사를 채용해 현장에서 일을 시키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인 의사협회, 중소병원협회, 개원의협의회 등에서 간호조무사 교육을 전문대학에서 할 필요가 있다고 천명했으니 간호조무사 전문대학 교육 필요성은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미 입학 경쟁률에서도 밝혀졌듯이 전문대학 간호조무과 교육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증명되었다.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학력 요건이 상향 조정되고 있는 추세이고 애완동물 관리 전공 학과까지 존재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공무원이 책상머리에 않아 학력 과잉이니 자원 낭비니 하고 가타부타할 사안이 아니다.

 

간호조무사 자격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양성학원에 등록하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전문대학 이상 출신인 현실을 고려하면 전문대학 간호조무과 신설은 오히려 자원 절약이다.

 

간단히 수치로 말하면 2년 내지 4년을 대학 다니고 다시 1년간 양성학원을 이수하여 간호조무사 자격을 따면 3년 내지 5년이 걸리는데 전문대학 간호조무과를 나오면 2년 만에 간호조무사 자격을 딸 수 있다.

 

물론 특성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간호조무사 자격을 획득하는 경우와 비교하면 2년의 격차가 있는 것이 사실이나 이는 부분만 보고 전체라고 간주하는 오류이다.

 

특성화 고등학교 간호 관련 학생들에 대한 배려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정부의 고졸 취업 장려 정책과도 부합되는 것 같고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조기 취업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한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에서 선의의 경쟁을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더 자격을 갖추고 더 능력이 있는 경쟁자의 등장이 발전의 원동력이다.

 

이를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달리 생각하면 전문대학 간호조무과 신설이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불리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남들은 대학을 다녀서 따는 자격을 고등학교만 나오고서도 딸 수 있고 그들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자긍심을 세워주는 일이다.

 

위의 개정안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위와 같은 세세한 설명이 필요 없다. 개정안의 뒤 조항과 대조하면 자체모순에 빠짐을 알 수 있다.

 

앞에서는 전문대학의 간호조무과 졸업자에는 자격시험 응시자격을 불허한다고 규정하면서, 뒤에서는 '간호학을 전공하는 대학이나 전문대학을 졸업한 자'에게는 응시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게다가 실습과정을 면제해 주면서까지 대학졸업자를 우대하고 있다.

 

고등학교 출신은 되고, 전문대학 출신은 학력이 높아 안 된다, 그러나 대학 출신은 된다는 식이다. 어처구니없는 자기모순이고 결정적인 오류다.

 

특정 이익단체의 주장에 홀리지 않은 이상 보건복지부가 이런 상식 이하의 입법을 예고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간호조무사가 학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간호등급제 등에서 제도적으로 차별 대우를 해오던 정부가 갑자기 더 배워서 봉사하겠다는 간호주무사 지원자의 앞길을 막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공무원으로서 자격과 철학이 있기라도 한지 의심스럽다. 문제의 개정 조항을 철회하고 개정안 입안 관련 공무원을 문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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