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0·30 시대'
조정 SBS 보도국 차장
2012.07.16 11:06 댓글쓰기

최근 저녁 약속에 늦어 택시를 탔다. 늘 그렇듯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택시기사가 묻는다. “전두환이 오래 살 것 같아요, 김영삼이 오래 살 것 같아요?” 뜬금없는 질문에 잠시 두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역사의 뒤안길에 물러서 있는 전직 대통령들. 그러고 보니 두 양반 모두 고령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27년생, 전두환 전 대통령은 빠른 31년생이니 여든을 훌쩍 넘겼다.


최근 전 전 대통령을 직접 봤다는 택시기사는 "그가 더 오래 살 것"이라고 장담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백수(白壽)를 누릴 거라면서… .


장어 집에서 펼쳐진 술자리에서도 길어진 인간의 수명과 나이가 화두에 올랐다. 요즘 정년퇴직하는 선배들 가운데는 흰머리 몇 가닥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젊은 사람들이 적지 않고 저세상으로 가기 전까지 사지 멀쩡히 사는 기간이 너무 길어졌다는 푸념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도 직장 안에서의 승진은 점점 늦어져 50대 과장, 차장이 넘쳐나고 겨우 부장으로 조직생활의 끝을 맺는 사람들이 다수라는 현실도 곱씹었다.


필자는 기자이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의 이력을 들춰보는 일이 많다. 나이와 출세, 나이와 사회적 역할이라는 점만 놓고 봤을 때 우리 사회에는 몇 십 년 동안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40대 중반을 지나는 나이에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나. 20년 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보도국장은 거뜬히 올랐을 연배다. 언론사의 인사적체가 극심해진 측면이 작용했지만 이는 비단 언론사 뿐 만은 아닌 것 같다.


과거 평균 수명이 짧았던 시절에는 출세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이명박 대통령이 70대 고령에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지만 그는 이미 35살에 굴지의 현대건설 사장이었다. 입사한 지 불과 11년여 만이었다. 고위직 검사로 잘 나가다 슬롯머신 사건으로 구속됐던 이건개 전 대전고검장은 만 29살에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거쳐 30세에 지금의 서울경찰청장으로 부임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찌감치 쿠데타를 일으켜 46세에 대통령에 올랐고 그를 보좌하던 김종필씨는 만 35세에 중앙정보부장이 됐다.


물론 사회상황이 안정되고 조직이 고등화한 현시점에서도 발탁과 특진을 통해 높은 지위를 일찍 획득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생은 과거보다는 천천히, 늘어난 수명만큼이나 얇고 길게 펼쳐지다 사그라져 간다. 그래도 슬퍼할 일 만은 아니다. 진급도 늦고 발전도 더딘 삶이 반드시 불행을 의미하는 건 아니니까.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젊은이들을 위로하면서 인용한 ‘소년등과일불행’(小年登科一不幸)을 되새겨보더라도 빨리 성취하는 것은 오히려 독(毒)이 될 수도 있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언론들은 ‘100세 시대’라는 구호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의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희망 목표적인 의미가 강하고 현실은 90세 시대의 도래가 맞는 듯하다. 그렇게 놓고 보면 보통 한국인의 삶은 30년 단위로 구분된다. 태어나서 첫 30년 동안은 배우는 시기가 된다.


청년실업이다, 취업난이다 해서 서른 살 가까이 돼서야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는다. 이후 30년은 일하고 벌고 양육하는 시기다. 상당수 직장은 50대 후반에 정년을 맞춰두고 있다. 쉰일곱 쯤 퇴직했더라도 늦게 자립하는 자녀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최소한 60줄까지 일을 해야 한다. 치킨 집을 내건 보험 외판을 하건 돈을 벌어야 한다.


이렇게 치열한 인생의 2막을 보내고 나면 나머지 30년, 아흔 살을 향한 마지막 항해가 남아 있다. 이 항해야말로 바다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고 배에 연료도 충분하지 않은 채 떠나는 고행의 길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30-30-30 시대. 격동의 1막, 2막, 60년 인생을 일구는 것도 녹록치 않지만 마지막 30년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절실하다. 건강과 재력, 죽음과 인생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일, 그리고 여생을 함께 할 친구가 마지막 항해를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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