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환자보다 피임 진료하고 싶습니다'
최안나 대변인(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
2012.07.02 07:49 댓글쓰기

산부인과 의사들은 매일같이 응급피임약 원하는 환자와 피임 실패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해서 낙태하고 싶다는 환자들을 만납니다. 우리나라 피임 실태와 낙태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저희 산부인과 개원의사입니다.


그런 저희가 볼때 지금 우리 현실에 응급피임약을 일반약으로 돌린다는 것은 한참 잘못된 일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저희 전문가들의 주장이 우리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걸까요?


이번 피임약 논란을 겪으며 그동안 우리 의사들이 어떻게 피임 진료를 했는지 반성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응급피임약을 일반약으로 돌리자고 주장하는 분들에게서 제일 많이 듣는 불만이 처방전 받으러 병원엘 꼭 가야 하느냐? 의사들이 해주는게 뭐가 있다고 번거롭게 만드냐는 것입니다. 


병원에는 단순히 처방을 받으러 오는게 아니고 복용을 위한 진료를 받으러 오는 겁니다. 호르몬제가 전문의약품이어야 하는 것은 내 건강에 맞춰 꼭 필요한 경우에 정확하게 먹어야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일반약으로 돌리자 해도 여성들이 무슨 소리냐 호르몬제를 어떻게 의사를 만나지도 않고 막 먹게 하느냐고 나서도록 돼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은건 전적으로 의사들 책임입니다. 의사들에게 피임 진료를 받으면 어떤 도움이 되는지 저희가 진료 현장에서 보여주지 못해 이런 논란이 초래된 것입니다.


그러나 의사들이 잘못한 건 의사들이 더 노력해서 개선하고 의사들이 제대로 전문가 역할을 할 수 있게 정책적으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의사들에게 불만이 있다고 실패율 높은 응급피임약을 복용하려는 여성들에게 피임 전문가인 의사를 만날 기회조차 없애는 것은 여성들을 더 위험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사전 피임율이 세계 꼴찌 수준으로 전문가에 의한 제대로 된 피임 문화를 정착시키는 게 시급합니다. 그런데 사전 피임율을 높힐 노력은 하지 않고 제일 실패율 높고 오남용 우려가 큰 응급피임약만 쉽게 살 수 있게하는 것은 낙태율 감소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여성 건강을 위협하는 일입니다.


응급피임약을 일반약으로 전환한 나라들의 분석을 보면 판매량은 급증하였지만 낙태율이 줄었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외국의 사례를 봐도 응급피임약의 접근성을 높여 낙태율을 줄이겠다는 것은 실패한 정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임 상담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여성의 몸에 호르몬제를 써서는 안되는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가임기가 아니라서 응급피임약 복용이 불필요한 건 아닌지, 호르몬제를 먹어서는 안되는 임신 상태는 아닌지 여부 등을 판단할수 있는 전문가는 산부인과 의사 뿐입니다.


전문약이냐 일반약이냐의 구분은 의사와 상담해서 먹을 것인가 약사와 상담해서 먹을 것인가의 구분이 아니고 의사의 진료가 필요한 약인가 아니면 국민이 판단해서 먹을수 있는 약인가의 구분입니다. 약을 먹어야 하는지 안 먹어도 되는지 또는 먹어서는 안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문진은 진료 행위입니다.


약사의 복약지도는 약을 먹는다는 전제하에 (전문약은 의사 처방, 일반약은 본인 선택으로) 어떻게 먹을 것인가를 지도하는 겁니다. 이를 혼동해서 약사도 문진해서 응급피임약이 필요한 지 여부를 상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의 안전을 위해 불편이 있더라도 의약사의 역할을 구분하고자 한 의약분업의 취지를 정면으로 훼손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피임 문화와 낙태 실태를 고려할 때 응급피임약은 오남용 우려가 매우 큰 약입니다. 이런 상황에 응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 즉 접근성 확대는 여성들을 무방비한 성교와 원치 않은 임신의 위험에 더 노출 시킬 위험이 있어 아직은 시기상조입니다.

 

산부인과는 낙태하고 싶지 않습니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해서 낙태하고 싶다는 환자를 만나기 보다 국민들이 피임 잘해서 계획 임신 잘하시도록 돕고 싶은 것이 저희 산부인과 의사들입니다. 우리나라는 낙태 예방과 계획 임신 증가를 위해 사전 피임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는 것이 급선무이며 이를 위해선 여성 건강을 책임진 산부인과의 노력이 중요합니다. 국민들의 계획 임신을 돕기 위한 피임 진료가 정착될 수 있도록 다음의 정책을 시행해 줄 것을 정부에 촉구합니다.

 

1.응급피임약과 경구피임약을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하여 피임 진료를 정착시키고 부작용과 오남용 우려를 최소화 해주십시오.

 

2. 피임 관련 진료를 건강 보험 급여화하여 국민들이 비용 부담 없이 피임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해주십시오. 특히 저소득층 등 취약 계층에는 본인 부담금을 면제하여 피임 진료의 접근성을 높여주시길 바랍니다.

 

3. 응급피임약 복용이 불가피한 환자의 즉시 복용과 편의를 위해 의약분업 예외 약품으로 지정하여 산부인과 외래와 365일, 24시간 진료하는 분만 병의원에서 즉시 투약할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국민들이 임신을 원치 않는 시기에 피임 실패하면, 특히 응급피임약을 드셨는데 임신되면 출산하시는게 아니고 대부분 낙태합니다. 응급피임약 드시는 분의 80%가 미혼여성이고 70%가 20대인데 이분들이 평생 애를 안낳겠다는게 아니라 원하는 시기에 낳겠다는 겁니다. 그때까지 낙태 위험이 빠지지 않고 계획 임신을 잘하려면 정확한 사전 피임이 중요합니다.

 

사전 피임 잘하는 분이 정기 검진도 잘 받고 건강하게 계획 임신 잘하십니다. 이는 출산율 향상에도 도움이 됩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 책임있는 성문화를 정착시키고 사전 피임율과 계획 임신율을 높여 여성의 성 건강을 지키도록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저희 산부인과 의사들이 여성들의 낙태 예방과 건강한 임신 출산에 앞장설 수 있도록 정부가 모든 정책적 지원을 해줄 것을  강력하게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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