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스타(Elista)에서 온 초청장
김한겸 교수(고대의대 병리학교실)
2012.06.18 08:14 댓글쓰기

엘리스타에 거주하는 부바예프 검도사범으로부터 초청장이 왔다. 부바예프사범이 주최하는 전러시아 어린이검도대회가 2012년 7월 5~8일 칼미키아공화국의 수도 엘리스타에서 개최될 예정이니 부디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달라는 것이다.

 

 검도를 40년 이상 즐겼지만 외국에서 초정장을 받은 것이 처음일 뿐 아니라, 평생 한 번 가보기 힘든 러시아 자치공화국으로부터 받았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칼미키아 공화국(Republic Kamykia)은 러시아 남서부에 위치한 러시아 자치공화국으로서, 우랄산맥의 서쪽에 있고, 카스피해 북서쪽, 볼가강(江) 하류 서쪽에 위치해 유럽으로 분류 된다. 참고로 러시아에서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는 우랄산맥과 카스피해이다.

 

칼미키아는 유럽 유일의 불교국가라는 점과 체스의 메카로 잘 알려져 있다. 인구의 대부분이 불자들이고,  키르산 일룸지노프(Kirsan Ilyumzhinov) 대통령은 체스챔피언 출신으로 국제체스연맹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영토면적은 50,300Km²로서 남한의 반 정도이나, 인구는 29만명으로 인구밀도가 3.8명/Km² 에 불과하다. 수도인 엘리스타의 거리를 거닐다보면 마치 한국이나 중국의 옛날 소도시에 와있는 느낌이 든다. 그 이유는 시민들의 모습이 동양인 비슷하고, 불교사원과 동양식 정자나 누각들이 있기 때문이다. 주민의 반이상을 칼미크인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의 조상이 오이라트 몽골족이다.

 

칼미키아(Kalmykia)공화국은 칼미크족의 거주지로 준가르왕국에서 이주해 온 종족이다. 본래 준가르초원은 중국 신강 위구르 자치구의 북서부에 위치한 초원지대로서 천산북로의 에미르 지방으로부터 이르티쉬강 상류에 이르는 지역을 말한다.

 

칼미크족은 서부 몽골족에 속하는 오이라트족(Oirats)의 후손으로서 16세기말과 17세기초에 중앙아시아에서 카스피해와 볼가강 유역으로 이주하여 유목생활을 했다. 1920년 칼미키야 자치주가 수립되었고 1936년 공화국이 되었지만 1944년 독일군에 협력했다는 근거 없는 주장으로 칼미키야인들은 추방되면서 같은 해 공화국도 폐지됐다. 1957년 주민의 귀환이 허가돼 자치주로 재수립됐으며, 1958년에 칼미크 자치공화국의 지위를 되찾았다. 1992년 3월 신연방조약이 체결되면서 러시아 연방의 칼미키야 공화국이 되었다. 특이한 것은 고려인이 1% 정도 된다는 것인데 대부분 구한말 우즈베키스탄에 정착했던 고려인이 1970년대 강제이주를 당해서 이곳에 오게 되었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은 1,2세대에 해당하며, 칼미키아의 고려인은 3,4,5세대에 해당한다. 러시아에서는 고려인을 ‘까레이스키’라고 부른다. 바스호트 마을은 엘리스타에서 차로 4시간 정도 떨어진 작은 시골마을로서 까레이스키가 30명 가량 살고 있다. 인근에 짜른이라는 소도시가 있는데 여기에는 700명 정도 된다.

 

2010년 1월 24일부터 2월 5일 약 2주간 고려대학교 사회봉사단이 해외봉사의 일환으로 바스호트마을의 고려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갖고 방문하였다. 열흘간 이곳 주민들 집에서 민박을 하면서 한국의 전통과 문화, 한국말 등을 알려주는 봉사활동을 하였다.

 

이곳 고려인 중 한국말을 하는 사람은 두 사람 밖에 없어서 현지에서의 통역은 오히려 부단장으로 봉사단원을 이끈 사학과의 민경현교수와 봉사단원 중 노어노문학과 학생들이 하였다. 한국말에 능통한 몇 안 되는 현지인 중 하나인 백화식 씨는 이민 2세대인데, 이번에 내가 엘리스타를 방문할 때 통역을 맡기로 내정되었다.

 

서울에서 엘리스타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인천에서 모스크바로 9시간, 모스크바에서 볼고그라드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2시간 반, 그리고 볼고그라드에서 자동차로 6시간을 더 이동해야 한다. 더구나 바로 연결되는 비행기가 없기 때문에 모스크바에서 일박을 해야 한다. 내가 처음 엘리스타를 방문했을 때는 2009년 12월이었다.

 

당시에 나는 고려대학교 학생처장과 사회봉사단 부단장을 겸하고 있었는데 고려대학교 사회봉사단을 파견하기 전에 사전답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겨울철이라 유럽전반에 걸쳐 눈보라가 몰아쳐 아침에 타기로 한 비행기가 취소되고, 모스크바의 다른 비행장으로 이동하여 밤비행기를 타야했다.

 

모스크바에는 4개의 비행장이 있는데 교통정체로 인해 이동하기가 쉽지 않고 러시아어를 모르면 헷갈리기 일쑤다. 5시간 걸려 밤비행기가 뜨는 공항으로 이동해서 안내판을 들여다보면서 비행기 뜨기만을 노심초사 기다리다 예정보다 두 시간 늦게 비행기를 타고 볼고그라드에 내리니 새벽 1시 반, 여기서 차를 타고 엄청난 눈보라를 뚫고 8시간을 이동하여 우리가 묵는 호텔에 도착하였다.

 

현지 일정에 따라 칼미키아 국립대학을 방문하여 총장과 양교간 학생교환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를 한 후, 방송국에서 간단한 인터뷰, 예술학교 방문 등을 하던 중, 내가 검도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현지 안내인이 나를 검도장으로 인도하였다.

 

중심가 시장인근에 위치한 도장은 체육관을 사용하는지라 매우 넓었고 30명 정도가 운동을 하고 있었다. 잠깐 동안 검도에 대한 이론과 칼을 쓸 때의 마음가짐 등에 대해 설명하였는데 모두가 경청하였고, 헤어질 때 큰절로 인사를 받았다. 이 과정을 촬영한 내용이 현지 방송에 방영되었고, 이렇게 해서 부바예프 사범과 친분이 시작되었다.

 

이후 귀국하여 수시로 호구와 어린이용 죽도를 현지로 보내게 되었으며, 다시 엘리스타를 방문할 때 마다 검도장을 들러 부원들을 격려하였는데, 매번 현지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와서 방영을 하였다. 나는 현재까지 세 번 엘리스타를 방문하였고, 부바예프 사범은 딸을 고려대로 한국어를 배우도록 보내면서 본인도 한국을 방문하였다. 이런 연유로 인하여 일본보다 한국에 대한 친밀감이 높아지고, 필자를 초청하게 된 것이다.

 

물론 칼미키아 사람들의 염원이었던 칼미키아국립대와 고려대학교 간의 교환학생 제도가 2012년에 성사된 것도 큰 작용을 하였다. 2년을 끌면서 힘겹게 진행되어 온 양교의 협력방안이 최종적으로 결실을 맺어 올 3월에 2명의 칼미키아학생이 서울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며, 가을에 또 다른 2명이 올 예정이다. 결국 국가간의 협력에 있어 다방면의 접근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내가 단순히 의과대학 병리학교수로만 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의사로서, 교수로서, 고려대학교 학생처장으로서, 고려대학교 사회봉사단 부단장으로서, 그리고 검도를 사랑하는 체육인으로서 애정을 쏟았기에 이루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번 여행에는 장롱에 쌓여있는 한복들을 가지고 가서 현지 고려인들에게 선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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