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잃은 응급의료대불제도'
2009.07.13 01:25 댓글쓰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사고, 응급질환 등으로 응급의료를 제공받아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응급의료에서 중요한 것은 신속한 이송 및 응급처치, 응급의학의 발달과 더불어 치료비도 빠뜨릴 수 없다. 이미 우리는 과거 보라매병원사건을 통해 의학적인 응급치료가 잘 되었음에도, 치료비 문제로 가족이 치료를 거부해 환자가 죽게 될 수 있음을 경험하였다.

이처럼, 의식불명상태의 응급환자에 대해 치료비와 상관없이 우선적으로 응급치료를 하고, 혹여 못 받은 치료비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것이 응급의료비미수금대불제도이다.

이러한 응급의료대불제도는 모든 응급환자로 하여금 신속히 응급의료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응급의료종사자에게 응급의료제공과 중단금지 등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는 응급의료 인력, 시설, 장비등이 대부분 민간에 의해 운영되는 점과 응급환자 혹은 그 부양의무자가 치료비나 간병 문제 등으로 응급환자의 생명과 신체의 이익에 반하는 치료중단결정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나아가, 설령 가족이 그러한 이유로 치료중단을 요구 하더라도, 응급의료종사자는 이에 개의치 말고 주어진 응급의료제공 의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렇듯, 의료기관 등이 법에서 부여한 응급의료 제공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였으나, 응급환자로부터 치료비용을 못 받은 경우에는, 국가가 대신 치료비를 주겠다는 제도가 응급의료미수금대불제도인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본 제도는 그 본래 도입취지를 잃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응급의료대불제도는 모든 국민을 위한 제도이다. 하지만, 경제적 빈곤자 등 특정계층만을 위한 제도인 것처럼 운영되고 있다.

즉, 정부는 2000년 응급의료에관한법률 개정을 통해, 응급의료대불제도의 성격을 ‘모든 국민의 응급의료대불제도’에서 ‘일부 경제적 빈곤층을 위한 응급의료대불제도’로 축소시켰다. 하지만, 만일, 응급의료대불제도가 경제적 빈곤자를 위한 것이라면 이는 “기금”이 아닌 “국가예산”으로 감당하여야 하는 것이며, 의료급여제도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긴급복지지원제도 등 사회보장제도 분야에서 담당하여야 한다.

응급의료대불제도가 일부 빈곤자를 위한 제도가 아닌 모든 국민을 위한 제도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사고나 질병 등으로 의식이 없어 치료여부를 결정할 수 없는 응급상황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그때 치료비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치료비는 없다면 나중에 갚을 수도 있고, 빌려서 낼 수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의료기관과 의료인은 치료비 지불능력여부를 살피느라 지연하거나 거부하지 말고, 신속히 치료하여 우선적으로 환자를 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혹여, 치료후 의료기관 등이 치료비를 못 받았다면, 의료인에게 응급의료를 제공하고 거부하지 못하도록 의무를 부여한 국가는 당연히 그 비용을 신속히 지불해 주어야 한다.

만일 국가가 그 비용지불에 있어 지연하거나 거부한다면, 그 만큼 의료기관은 응급치료제공에 소극적이게 될 것이고, 지연치료로 인한 환자의 생명과 신체의 치명적인 손해의 책임은 결국, 잘 만들어진 제도를 잘못 운영한 국가에게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본 제도는 응급의료종사자를 위한 제도라는 것이다. 응급환자에 대해 응급의료제공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한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므로 궁극적으로는 모든 국민의 생명과 신체보호를 위한 것이지만, 일차적으로는 응급의료 종사자를 위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모든 국민이 아닌 경제적 빈곤자로 대상범위를 축소한 것은, 도덕적 해이 등 재정과 운영상의 곤란을 이유로 제도를 크게 왜곡한 것이다. 도덕적해이가 우려된다면 이를 방지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지, 제도의 본질을 바꿔 유명무실하게 전락시킨 것은 잘못이다. 따라서, 정부는 현행 응급의료대불제도의 대상을 경제력 능력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국민의 신속한 응급의료를 제공받을 권리는 보장해야 한다.
한양대학교 고령사회연구원 송기민 기자 (haieung@naver.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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