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푸른 초원위에
2009.07.06 08:45 댓글쓰기
캐나다로 떠날 때만 하더라도 타미플루를 챙겨간다는 둥, 마스크를 잔뜩 싸가지고 간다는 둥 공항에서부터 들썩거리면서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왠걸, 캐나다에서는 어느 한 사람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이 없었고, 신종인플루엔자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도 없었다.

차를 타고 가다보면 만나는 사람도 별로 없고, 항상 외국에 나가서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 나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보이는 사람도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저 푸른 광활한 대지와 초원 뿐이었다. 차도 적고, 사람도 적고, 그래서 만나는 몇 안되는 사람들은 항상 웃으면서 얼굴을 마주했다.

뭔가 흥미로운 일이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 떠났던 캐나다에는 정작 아무 일도 없었고, 가져간 노트북 컴퓨터로 확인한 국내 웹사이트들을 보면 한국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을 정도로 대형 사건 사고들의 연속이었다.

산부인과학회는 학회대로 NST의 임의 비급여 문제에 대한 입장정리나 이슈에 대한 메일을 계속 보내오고 있었고, 뉴스는 온통 보수와 진보의 갈등, 정치권의 대형 '말말말'을 쏟아붓는 이야기들로 넘쳐났다. 또 6월의 주요 항쟁들에 대한 각계의 입장과 북핵문제는 또 어떠한가.

한국에서 정신없이 생활할 때와는 달리 캐나다에서 보니 한국은 정말 걱정스러운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는 나라, 그래서 한국에 오는 외국 특파원들은 항상 승진을 해서 돌아가거나 특종이 난무하는 나라라고 말한단다.

외국인들이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봤을 때 'Korea'라고 말하면 일단 한 번 놀라고 본다. 거기에 'South Korea'라고 말하면 한 번 더 놀라는 것으로도 모자라 '괜찮은 거니?'라고 되물어본다. 태연히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면 외국인들은 다시 한 번 놀란다.

정말 우리는 괜찮은 것인지, 아니면 얼마 전에 읽은 칼럼의 제목처럼 '두려워하지 않는 국민이 두려운' 것인지 걱정스럽다. 쏟아지는 사건 사고들에 만성이 되어 스스로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나머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국가의 국민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우리 아이들에게 언제쯤이면 저 푸른 초원 위에서 평화롭고 조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지 막막한 심정이 들어 걱정이 눈앞을 가리는 동안에도 푸른 초원은 한없이 계속됐다.
김태희 교수 순천향대 부천병원 기자 (webmaster@dailymedi.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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