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세브란스와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
2009.06.02 01:45 댓글쓰기
2008년 2월 기관지내시경 검사를 받던중 심장이 멈춰 심폐소생술 등을 받았으나 심한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식물인간상태에 빠지게 된 70대 중반의 김씨에 대해 가족들은 '무의미한 연명치료장치를 제거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 2심 법원에 이어 지난 2009년 5월 21일 대법원은 “사망의 과정에 진입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기한 연명치료 중단을 인정한다”고 판시,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해 존엄사(尊嚴死)를 인정하는 최초의 판결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왜 이러한 존엄사판결에 각별한 관심을 갖는 것일까? 아마도 그 것은 과거 '보라매병원 사건'의 영향으로 의료진은 생명연장 치료중단을 꺼리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1997년 12월 뇌를 다쳐 치료 중인 환자를 가족들이 퇴원시켜 달라고 보라매병원 의료진에게 요구했고, 요구에 따라 의료진은 환자를 퇴원시켰고 이에 환자가 숨지자 의료진은 살인죄로 기소됐다. 이에 대법원은 살인방조죄로 실형을 선고했고, 이 사건 이후 의료계는 존엄사 판단에 대해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과거 보라매병원 사건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라매병원 사건은 회복 불가능한 환자조차 치료를 중단하면 살인이 된다고 판시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판결 후 의료기관에서는 모든 치료중단 행위는 살인이 된다고 잘못 알려지면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부추기는 사회병리 현상이 나타났다.

이처럼 보라매병원 사건은 그간 의료계에서 주장된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종교적인 ‘소극적 안락사’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환자가 계속적으로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환자 또는 보호자 요청에 의해 의사가 어쩔 수 없이 퇴원을 허락하는 소위 '의학적 충고에 반한 퇴원(DAMA)'인 것이다.

DAMA는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의사의 환자생명보호 의무가 충돌하는 것으로써, 이에 대해 우리사회는 아직까지 법적·윤리적인 판단과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지난 10년간 의료계는 ‘의사살인’이나 ‘소극적 안락사’측면에서 고민했고, 법조계는 피고인들의 죄책이나 법원판결의 타당성에 대해서만 논의를 집중했다.

또한 법조계의 법이론에 충실한 견해는 의료계의 현실을 도외시 하고, 기대가능성 등 책임조각에 대한 변호인의 주장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

궁극적으로 보라매병원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행위 당시, 이런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의사들이 몰랐다는 데 있다. 물론 두 사건은 의식불명 환자에 대해 가족이 치료중단을 요구한 점등 유사한 점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두 사건의 본질적인 환자의 생존가능성 여부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엄사를 인정한 이번 ‘세브란스 사건’과 의사에게 살인방조 혐의를 적용한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이 발생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혼돈하는 것은 사회적 낭비이다.

지난 2월 5일 신상진 의원 등에 의해 ‘존엄사 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라고 한다. 늦은 감은 있으나, 환영할 일이다. 이제는 의료계나 법조계를 비롯하여 관련된 전문가들은 사안의 본질을 정확히 직시, 생명을 선택하는데 있어 개인과 사회적으로 불합리하지 않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한 생명윤리나 의료윤리 등 의료현장에서는 의료 이외 사회적, 윤리적 나아가 법적 문제와 결부된 것이 많다. 이러한, 난해한 문제를 의사에게만 떠 넘겨서는 안된다. 사회적 및 제도적으로 병원윤리위원회 등과 같은 기구를 구성해서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더불어 의료현장의 의사들로 하여금 환자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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