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화내기-인간도 동물이다
2009.02.01 08:57 댓글쓰기
TV에서 동물의 왕국을 보면 인생을 살 때 어려웠던 상황에 대한 답을 가끔 찾을 때가 있다. 한반도의 공룡이라는 다큐멘터리 드라마가 잘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있던 중 얼마 전 우연히 끝부분을 잠깐 보게 되었다. 공룡부부가 어렵게 새끼를 부화시켜 키워 가는데 그만 새끼들이 다른 공룡의 밥이 되었다. 분노한 수컷 공룡은 죽을힘을 다해 악전고투 끝에 상대 공룡을 무찔렀는데 그 과정에서 수컷은 골절 및 출혈 등의 치명적인 상처로 거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암컷 공룡은 건강한 새로운 수컷 공룡을 찾아서 아무 미련 없이 떠나고 상처 입은 수컷 공룡은 호숫가에서 마지막 한모금의 물을 마시고 다른 동물들의 밥이 될 미래를 기다리며 죽어가는 것이었다. 물론 드라마이기 때문에 작가가 그렇게 이야기를 전개시켰을텐데 참으로 의미 있는 통찰이라는 느낌이 든다.

사람이 동물과 다르기 때문에 위대한 점도 있지만 반대로 동물은 쉽게 넘어갈 부분에 대해서도 사람은 정신적 고통과 질환에 시달린다.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고 이것은 다른 말로 마음의 고통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의 고통의 원인을 찾아야 해결이 가능하다. 그런데 해결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화를 주체 못하고 화에 휩쓸려 있기 때문이다. 분노와 흥분 상태에 도달해 있다면 올바른 해법을 찾을 수가 없다. 앞에 언급한 암컷 공룡이 사람처럼 슬픔에 쌓여 순애보를 발휘하여 수컷 공룡 옆에서 수발을 들고 도와준다면 사람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암컷 공룡은 왜 냉정히 떠났을까? 아마도 자연의 법칙 때문이었으리라 짐작한다. 자신의 사명이 자손을 번식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 유전자가 그렇게 지시했을 것이다. 다른 예를 보면 태평양을 헤집고 다니던 연어가 결국에는 강릉 앞바다로 와 하천을 거슬러 올라가서 산란을 하고 최후를 맞는다.

그러한 연어의 생의 목적은 결국 자손을 번식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사람의 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언젠가 내가 선생님께 “인생의 목적을 무엇으로 삼는 것이 좋습니까?” 하고 진지하게 질문을 하자 나의 선생님께서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보통 평범한 사람들은 자손번식이지. 성직자라든가 특수한 몇 사람 빼놓고는 말이야” 하셨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어안이 벙벙했는데 두고두고 생각할 때마다 큰 위로가 되고 마음에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용을 쓰고 발버둥치며 살아도 죽고 나서 나에게 남는 것은 돈, 명예, 권력 아무 것도 없고 오로지 자손만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니 자손이 있다면 이미 나의 할 사명은 다 한 것이고 조상을 뵐 때 떳떳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보면 내 마음에 거슬려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고 싶은 사람도 생기고, 본떼를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고 싶기도 한다. 심지어는 사라져줬으면 하는 사람도 생기고, 간혹 손수 사형집행을 하고 싶은 대상도 생긴다. 내 마음이 이런 흥분상태에 도달했을 때 그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기고 나중에는 후회하게 된다. 만약 그럴 때 ‘나는 내 행동에 대해 후회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완전한 성인이거나 바보 둘 중에 하나다.

올바른 행동을 하려면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 물론 연말연시에 어려운 사람들을 보고 측은지심이 일어나 도움의 손길을 베푸는 것은 설사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좋은 일이다. 그분들은 자손들이 복을 받을 것이고 실제로 그러한 현상이 자주 생긴다. 하지만 분노의 감정은 백해무익이므로 반드시 가라앉혀야 한다.

짧지 않은 교수생활 중 재작년부터 나타나는 현상인데 학생들이 시험점수에 대해 확인을 요구한다. 물론 학교규정에는 학생들이 성적을 확인하고 잘못되었다면 정정하는 기간이 공식적으로 주어져 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성적을 확인해 달라는 학생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학생들이 성적확인을 요구할 때 과연 담담히 요구했을까? 아닐 것이다. 자신의 점수가 잘못 채점되거나 잘못 기록되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억울함과 분노를 느끼며 흥분된 상태에서 따지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다 간혹 조교들의 실수로 집단적으로 이상하게 기록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여러 사람이 같은 경우를 겪기 때문에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신만이 억울하게 채점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학생들의 문제점은 자신의 탓보다는 남의 탓을 먼저 하는 특징이 있다. 전문용어로 투사라 한다. 내가 실력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채점을 잘못했다고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꼭 그렇게 행동을 한다. 수능 점수 확인하러 갔던 학생과 부모가 현장에서 대판 싸운다고 한다. 답을 한 줄씩 밀려 썼기 때문이란다.

흥분해서 화내지 말고 우선 자신의 잘못부터 생각해보고 그래도 자신의 잘못이 없다고 생각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행동을 해야 한다. ‘제대로 화내기’라는 제목이 포함하는 의미는 “제대로 알고 화내자” 라는 뜻도 포함된다. 그래도 화가 나면 동물들의 냉정한 현실감각도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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