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정의 단상(斷想)] 방송과 의료 홍보
2012.01.10 17:40 댓글쓰기
▲조정 sbs 보도국 차장

. 오전 이른 시간인데도 대기실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가득하다. 비치된 잡지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여성들. 병원 특유의 고요함을 깨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 시술을 받은 환자의 90%가 완치됐습니다”,“노화 방지 뿐만 아니라 피부 잡티까지 완벽하게 잡아 줍니다” 낯익은 병원 원장이 방송 출연하는 모습이다.


30분 분량으로 편집된 영상이 모니터를 통해 쉴 새 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풍경은 피부과와 성형외과, 척추병원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방송의 위력을 잘 아는 발 빠른 원장님들이 애용하는 환자 유치 전략이다.

 

방송 기자로서 필자도 의료 영역에 미치는 방송의 영향력을 여러 차례 간접 경험해 보았다. 시력 교정술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돼 선풍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던 시기였다. 라식 수술의 장단점을 설명해 줄 안과 의사가 필요했다.

가까운 선배가 최근 개원한 친구의 병원을 소개해 줬다. 시술 장면과 인터뷰를 포함해 1분 정도 전파를 탔을 뿐인데 다음날부터 그 병원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공간을 늘리고 수술 장비를 추가로 들여왔다. 그 즈음 의사를 소개해 준 선배, 안과병원 원장과 함께 몇 차례 술자리를 가진 기억이 난다. 솔직히 말해서 방송 이후 그 병원이 급성장했다는 사실은 잘 몰랐고 그저 인터뷰 잘 하는 의사 한분을 알게 됐다는 것을 소득으로 생각했다. 몇 해가 지난 뒤 다시 그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라식수술 병원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인터뷰를 했던 그 의사 친구가 폐원할 위기를 맞았단다. 수요 예측을 잘 못하고 병원을 확장해 궁지에 몰렸으니 좀 도와달라는 것이다. 마침 불황과 관련한 반값 마케팅이 유행하던 시기라 내릴대로 내린 수술비는 괜찮은 뉴스 소재가 될 듯 보였다. 여러 업체의 반값 판매 행태와 더불어 ‘100만원에 좌우 양안 라식수술 안과 등장’ 소식을 한 줄 뉴스에 담았다. 또 대박. 정상가를 파괴한 덤핑이었지만 수술비에 부담을 느끼고 있던 환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그 병원은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렇듯 의료 홍보와 관련해 방송의 위력은 실로 막강하다. 신뢰도를 담보한 뉴스에 의사가 등장한다는 것, 곧바로 의사에 대한 무한 신뢰로 이어진다.


그러나 언론, 사회 환경의 변화는 방송을 통한 의료 홍보가 자칫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는 상황을 불러왔다. 의학 전문기자가 아니라서 상세한 분석은 못해봤지만 상당수 의료 리포트가 통계와 현상을 과장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의료진이 새로 시도한 치료 기법이 특정 질환에 매우 유효하다는 보도를 보자. 병원이 제시한 근거는 해당 병원에서 진료 받은 20~30명 환자의 경우가 전부다. 통계가 유효성을 갖기에 모집단이 너무 빈약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눈에 띄는 뉴스를 만들기 위해 기자는 의사에게 보다 인상적인 멘트를 요구한다. 시술의 부작용이나 한계점은 뒤로 숨기고 특효만을 강조해달라고 주문한다. 이 역시 의사의 이해관계와도 맞아 떨어진다.


문제는 왜곡된 정보가 무사히 유통되기에는 언론, 정보 환경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의료 소비자들은 SNS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언제든 원하는 만큼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환자들 뿐만 아니라 전문가 그룹도 관련 내용을 상시적으로 모니터하고 있다. 부족한 임상 경험과 어설픈 통계치를 내세워 환자나 시청자들을 현혹하기에는 시대가 너무 많이 달라졌다. 이런 의료 리포트가 나가면 관련 학회와 다른 의사, 내막을 아는 환자들의 조롱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홍보 자료를 낸 병원과 의사의 격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의사가 많아지기는 했으나 누구든 각종 매체로부터 인터뷰나 취재 요청을 받는 일이 생기게 된다. 과거 만병통치, 전지전능한 의사의 모습으로 대중을 만나기보다 신뢰감 주는 솔직한 이미지로 다가가 보자. 또 자신감 있는 태도로 전문성 있는 내용을 쉽게 풀어 얘기해 보자. 눈높이가 한껏 높아진 환자들이 서서히 깊은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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